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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록(文衡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910
형태사항    :
크기: 27.7×19.1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5×15.0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536
M/F번호    :
MF35-498, 844
기록시기    :
1910年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시대 文衡 역임자의 명단과 이력을 정리하여 수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上下向黑魚尾의 版下口에 ‘李王職’이, 좌측 하단 난외에는 ‘(田淵納)’이 인쇄된 주색의 인찰공책지에 필사되어 있다. 이를 통해 ‘李王職’이 신설된 1910년 이후의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서명의 ‘文衡’은 조선시대 文翰을 주재하던 관원으로서 흔히 대제학의 별칭으로 사용되지만 시기마다 그 호칭의 대상이 일정하지 않다. 조선 초기에는 예문관 대제학성균관 대사성을 겸임한 자를 일컬었고, 성종弘文館이 법제화된 뒤에는 예문관·홍문관대제학知成均館事를 겸임할 때 문형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문형의 선발은 會圈의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전현직 대신을 비롯해 東·西壁과 전임 대제학, 6조 판서, 한성부 판윤 등이 모여 대상자에게 권점을 한 뒤 이를 계산해서 선발하였다.
본서는 이렇게 선발된 문형의 명단과 이력을 정리한 책으로, 조선 초의 卞季良(1369~1430)부터 1872년(고종 9)에 제수된 趙性敎(1818~1876)까지 수록하였다. 한 면당 한 명의 인원을 시기순으로 서술하였고, 성명 아래에 자, 호, 본관을 비롯해 문과 급제 시기, 문형에 제배된 시기, 최고 역임 관직 및 시호, 문집 유무, 형제나 자손 중 정승 또는 문형 역임자 등이 수록되었다.
한편 趙寅永(1782~1850)·趙秉鉉(1791~1849)·徐箕淳(1791~1854)·趙斗淳(1796~1870)·南秉哲(1817~1863)·金炳學(1821~1879)·朴珪壽(1807~1876)·조성교의 경우에는 인명만 기록되었다. 그리고 李爾瞻權愈에 대해서는 별도의 항목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 이유를 ‘案’이라고 하여 명시하였는데, 이이첨은 別薦, 권유는 大臣薦이라는 파격적인 방법에 의해 문형에 제수되었기에 別薦案에 기록한다고 설명하였다.
본서는 조선시대 관직이나 인물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가 문형 역임자를 설명한 마지막 부분에서 정승을 지낸 인물의 경우에는 ‘見台司考’라 기록하였고, 李滉에 대해서는 ‘見儒林考’로 부기한 부분이 있는데, 이는 태사, 즉 의정부 관련 부분이나 유림 부분에서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하라는 표시이다. 이를 보면 본서는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일 서명의 서적이 장서각 이외에도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원광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각각 다르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경우는 1794년(정조 18) 11월 이후 문형 선발과 관련된 계사나 전교 및 회권 현황 등을 수록하였다. 이에 비해 두 종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 중 한 종은 ‘單兼文衡題名案’과 ‘兩館大提學題名案’·‘別薦文衡題名案’으로 나누어 설명하였고(奎5598), 다른 한 종의 경우는 1628~1794년(인조 6~정조 18)에 걸친 선발 과정에서 이루어진 계사나 전교 및 회권 현황 등을 수록하였다(奎16019). 따라서 조선시대 문형에 대해서는 각 기관에 소장된 자료들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시대 이른바 主文이라고 불리던 문형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아울러 이력까지 설명하면서 문형 전후의 관직을 살폈으므로 조선시대 관료제 운영의 양상에 접근하기가 유용하다.
참고문헌
六典條例
문형고」, 박천규, 『사학지』 6, 단국대학교 사학과, 1972.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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