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根題가 ‘摠府先生錄’이며, 表紙書名과 版心題는 없다. 각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奉謨堂印’이 날인되어 있는데, 제4책은 제2면에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주색 필사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는데, 墨抹하거나 종이를 도할하고 덧붙여 수정한 부분이 있다. 또한 주색 비단 피휘지를 부착하기도 하였으며, 서미에도 필사 기록이 있다. 유독 제4책만 상하내향삼엽화문어미의 주색 필사 인찰공책지인데, 제4책은 2면부터 필사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에는 도총관 혹은 부총관으로 재직하였던 인물들의 직위와 이름, 임명된 연월일 및 임명 당시 직책, 체직 혹은 사직 연월일 및 사유 등의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매겨진 책의 순서는 연대순의 착란이 심하여 제4책이 제1책으로, 제1책이 제4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제4책은 세조 대 오위도총부가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1639년(인조 17)까지의 명단이다. 앞부분에는 徐居正(1420∼1488)이 지은 서문과 李景奭(1595∼1671)이 1644년(인조 22)에 붙인 識가 실려 있다. 서문에는 義興三軍府 설치에서 五衛 성립까지의 내력과 세조가 三軍鎭撫所를 병조 소속이 아닌 五衛都摠府로 개혁하여 병조는 兵政을 총괄하고 오위도총부는 軍務를 관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識의 내용은 임진란으로 도총부 선생안이 사라졌는데, 난후에 追錄하여 1책을 작성하였으며 그 역시 낡아서 훼손이 심해지므로 安夢尹(1571∼1650)과 李景嚴(1579∼1652)이 협력하여 다시 작성하였다는 것이다.
이어서 수록된 명단에는 王子 密城君李琛(1430∼1479)에서 洪振道(1584∼1649)의 이름까지 적혀 있다. 밀성군의 이름 아래에는 세조 대에 삼군진무소를 오위도총부로 개혁하였을 때에 우선 선발되었다는 내용이 부기되어 있다. 다른 인물들의 성명 아래에는 도총관으로 임명된 연도를 명의 연호와 간지, 혹은 조선 국왕의 묘호와 간지로 표기하였으며 겸직하고 있던 직함도 함께 부기하였다.
제2책에는 1686년(숙종 12)에 도총관으로 임명된 金德遠(1634∼1704)에서 1721년(경종 1)에 부총관이 된 白時耉(1649∼1722)까지 수록되어 있다. 제3책에는 1749년(영조 25)의 부총관柳萬重(1677∼?)에서 1770년(영조 46)의 도총관雲南君榗까지 실려 있다. 제1책에는 1770년의 부총관李萬恢(1708∼?)에서 1779년(정조 3)의 부총관尹坊(1718∼1795)까지 기재되어 있다. 崔錫恒(1654∼1724), 趙泰耉(1660∼1723), 密豊君李坦(?∼1729), 麗川君李增(?∼1752), 洪啓禧(1703∼1771), 永城尉申光綏, 鄭致達(?∼1757), 金陽澤(1712∼1777), 李(玉+厚)(1694∼1761), 洪麟漢(1722∼1776), 具善復(?∼1786), 宋瑩中, 鄭厚謙(1749∼1776), 尹泰淵(1709∼1777), 金龜柱(1740∼1786), 具以謙(1741∼1787), 洪樂純(1723∼?), 李鎭翼(1728∼?), 具明謙(?∼1786) 등 역모에 관련되어 사사되거나 유배지에서 죽은 인물에 대해서는 성명이 전부 塗抹되거나 성이나 이름이 가려져 있다. 그러나 도총관이나 부총관으로 임명된 연월일의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승정원일기』의 해당 일자 자료를 통해 성명을 확인할 수 있다.
본서에 가장 늦게 수록된 윤방의 체임일은 1780년(정조 4) 2월이지만 도말된 이들이 관련된 사건은 1786년(정조 10)까지에 해당하므로 본서의 필사 시기는 그 이후로 추정된다.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 오위도총부의 도총관 및 부총관의 명단과 제수 및 체직 일자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