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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당하무신관안(堂下武臣官案)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769 / 영조 45년
형태사항    :
크기: 32.6×19.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절첩장(折帖裝) / 수량: 1첩(帖) / 판식: 반곽(半郭) 27.0×17.8cm /
청구기호    :
K2-517
M/F번호    :
MF35-695
기록시기    :
1769~1772年(英祖 45~4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영조 대의 무반 중에서 3품 관직을 거친 후 영장을 거치지 않은 이들과 宣薦 출신으로 出六하였으나 도총부선전관청의 관직을 거치지 않은 이들의 명단을 수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堂下武臣官案’이며, 書根題는 없다. 표지와 제첨이 모두 비단으로 장황되어 있는데, 표지는 청색, 제첨은 흰색, 제첨의 테두리는 연분홍색이다. 본문은 필사 인찰공책지에 황색 첨지를 붙여 필사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편자나 필사자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모든 연도가 간지로만 표기되어 작성 시기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없다. 그러나 기록된 명단을 『승정원일기』에서 확인한 결과 1769년(영조 45) 4월 20일의 기사에 일찍이 수령을 거친 자들을 아뢰라는 명에 대해 보고된 명단 중 鄭汝坤, 申大觀, 洪啓襚 3인의 이름이 확인되므로 본서의 작성 시기는 이 날짜 이후로 추정된다. 또 전부사 李徵國1759년(영조 35)인동부사를 지낸 기록이 있고, 1772년(영조 48)에는 통제영 우후로 보임되었으며, 전현감이라 기재된 李((叙/土)1765년(영조 41)흥양현감에 임명되었고, 1772년에는 영암군수에 제수되었으므로, 본서가 작성된 시기는 1772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전부사 이징국을 비롯한 11명의 명단이 기재된 ‘內外三品後未經營將人員’과 전만호 李徵大 등 83명의 성명이 적혀 있는 ‘宣薦出六後未經摠府宣廳人員’의 두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별로 前銜과 성명, 과거 급제 연도, 관직을 그만둔 해와 이유, 당시 거주지의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명단은 등과 연도와 무관하게 체직된 연도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3품직을 거친 인원 중 체직된 연도가 가장 이른 경우는 1761년(영조 37)이고 가장 늦은 이는 1769년(영조 45)이다. 선천 출륙자들 중 체직된 연도가 가장 이른 경우는 1738년(영조 14)이고 가장 늦은 경우는 역시 1769년이다. 고위직보다 하급직의 적체가 더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무반직 운영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는 자료이다.
집필자
강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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