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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낙점(落點)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영조(英祖) 어필(御筆) 낙점(落點)
작성시기    :
1752 / 영조 28년
형태사항    :
크기: 39.0×28.8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인장정보: 啓, 奉謨堂印
청구기호    :
K2-511
M/F번호    :
MF35-1726
기록시기    :
1752~1770年(英祖 28~46)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영조 재위 연간 兵曹에서 禁軍別將이나 雲劒 등의 선발을 위해 후보자를 갖추어 올린 望單子에 국왕이 낙점한 문서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落點’이다. 표지 서명의 아래에 “自英祖二十八年(1752) 同至四十六年(1770)”이 기재되어 있다. 兵曹에 속한 관직의 望單子를 모아 비단으로 장황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충해가 심한 편이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모두 일곱 장의 망단자와 이에 대해 국왕이 낙점한 문서로 이루어졌다. 수록 대상 시기는 표제 하단에 1752년(영조 28)부터 1770년(영조 40)까지로 명시하였으나, 1752년의 문서는 확인되지 않고 1756년(영조 32)에 낙점한 문서부터 수록되었다.
첫 번째 문서는 1756년(영조 32) 3월 12일에 낙점한 禁軍別將 薦望單子로, 趙鎭泰를 改差하고 그 후임을 선발하기 위한 문서이다. 前兵使 申旼行副護軍 李衡身鄭晹賓이 후보자로 추천되었으며, 신민이 낙점을 받았다.
두 번째 문서는 1756년 大殿平復後인 9월 26일 明政殿에 親臨하여 頒敎하고 陳賀하는 행사에 동원될 別雲劍·雲劍差備·偃月刀差備·槍劍將·椎牌將의 선발과 관련된 것이다. 별운검과 언월도차비·창검장은 4명을, 운검차비와 추패장은 2명을 낙점하였고, 별운검과 운검차비·언월도차비에 대해서는 낙점한 이들과 별도로 預差라는 예비 인원을 망단자에 올려 낙점을 받았다.
세 번째 문서는 1756년 慈殿인 仁元王后의 탄일에 仁政殿에 친림하여 진하하는 행사에 동원될 별운검과 운검차비의 선발과 관련된 문서이다. 망단자에 올라 있는 인물이 두 번째 문서의 별운검과 운검차비 인원과 동일하여 같은 문서로 혼동될 수 있으나, 문서의 오른쪽 하단에 “此單 慈殿誕日擧行”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본문에 수정한 부분이 있어 앞의 문서와는 다른 행사를 위한 천망단자와 낙점이다. 앞의 문서와 낙점 인원에 차이가 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문서는 1757년(영조 33) 7월 9일과 1758년(영조 34) 3월 1일에 낙점한 금군별장 천망단자이다. 1757년 7월 9일에는 遷轉한 具善復에 대신해서, 1758년 3월 1일에는 外任으로 나가는 李柱國을 대신할 금군별장의 선발을 위한 것이다. 1757년에는 조진태가, 1758년에는 李泰祥이 낙점을 받았다.
여섯 번째 문서는 1765년(영조 41) 10월 11일 景賢堂에 親任하여 受爵하는 행사에 동원될 별운검과 운검차비에 대한 천망단자이고, 일곱 번째 문서는 1770년(영조 46) 9월 1일 국왕의 明陵 展謁과 昭寧園 展拜 및 환궁할 때 동원될 별운검과 운검에 대한 천망단자이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시대 인사 관리의 실태를 해명할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국왕의 측근에서 호위를 담당하는 금군별장과 국왕의 거둥 시에 차출되는 별운검 등의 선발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이 중 별운검이나 운검 등의 차출과 관련해서 병조에서 천망단자를 올리지만, 그 작성은 도총부에서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별운검 등에 차출되는 인원들의 분석을 통해서 호위 무신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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