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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강화부선생안(江華府先生案)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강화부(江華府) 편(編)
작성시기    :
1899 / 광무 3년
형태사항    :
크기: 31.7×21.5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16.2cm / 인장정보: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2-499
M/F번호    :
MF35-246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618년(광해군 10)부터 1899년(광무 3)까지 江華府 守令의 명단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江華邑誌’이다. 표지 서명 아래에 ‘京畿道’가 기재되어 있다. 본문은 주색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충해가 심한 편이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圖書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서문 없이 府使, 留守, 鎭撫使, 郡守, 府尹 등 모두 250명의 명단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성명 아래에는 出仕路(文·蔭·武), 官階, 赴任 및 遞任 年月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일부의 수령 명단에는 註記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 초기부터 강화부에는 수령으로 都護府使가 파견되었는데,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잠시 강화로 피난을 하였다가 還都하면서 江華留守府로 승격시켜 유수가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1678년(숙종 4)에는 강화유수가 內職으로 되어 있어서 密符가 없기 때문에 이를 變通하기 위해 강화유수로 하여금 鎭撫使를 겸직하도록 하고 밀부와 諭書를 내려주어 江華灣 일대를 방어하는 5營을 통솔하도록 하였다. 1895년(고종 32)에는 23부제가 실시되고 모든 고을명이 군으로 통일되면서 江華郡으로 개편되었고, 1896년(건양 1)에는 지방 제도 개정으로 다시 江華府로 개편되었다. 『강화부선생안』에도 이와 같은 강화의 행정상의 변천과 위상이 반영되어 있다.
府使 명단은 1618년(광해 10)에 부임한 李安訥부터 李重老까지 7명이 수록되어 있다. 이안눌을 제외하면, 주기가 없다. 留守 명단은 1627년(인조 5)에 부임한 鄭孝成부터 1677년(숙종 3) 9월에 부임하여 1678년 4월에 체임한 李觀徵까지 41명이다. 부사로 재임했던 이안눌1628년(인조 6)유수로 다시 부임하기도 하였다. 鎭撫使 명단은 1678년 4월에 부임한 尹以濟부터 1895년 정월에 부임하여 5월에 체임한 申正熙까지 196명이다. 진무사의 정식 관직명은 留守兼鎭撫使이지만, 鎭撫使라고 표기되어 있다. 郡守 명단은 1895년에 부임한 洪鍾萱沈殷澤 2명이며, 府尹 명단은 1896년에 부임한 金甲洙부터 1899년(광무 3)에 부임한 韓麟鎬까지 4명이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강화부의 수령 명단을 망라한 자료이다. 강화부 수령에 제수되었어도 부임하지 않았던 인물의 명단은 제외되고 실제 부임했던 인물들만 수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 강화부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집필자
임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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