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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황조유민록(皇朝遺民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왕덕구(王德九) 집(輯)
작성시기    :
1818 / 순조 18년
형태사항    :
크기: 19.5×12.6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권(卷) 1책(冊)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494
M/F번호    :
MF35-99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유민의 후손이었던 王德九1818년(순조 18) 명말청초에 조선으로 유입된 유민 9인의 家系 및 史蹟을 정리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皇朝遺民錄’이다. 繼線 및 匡郭이 없는 唐紙에 필사하였으며, 책 상하단에 包脚이 있다. 본래 표지를 그대로 둔 채 현대에 改裝한 것으로 보인다. 뒤표지 面紙의 “純祖十八戊寅, 王德九撰, 馮榮燮寄贈”이라는 기록을 통해 明末 遺民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는 馮榮燮1818년왕덕구가 편찬한 이 도서를 기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서문은 왕덕구1818년 지은 것으로 崇禎末年에 여진중국에 침입한 사실과 여기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피난 갔던 사대부들 가운데 조선에 들어온 庠生 王以文, 庠生 楊福吉, 庠生 馮三仕, 庠生 王文祥, 庠生 裵三生, 庠生 王美承, 進士 鄭先甲, 留守 黃功一, 庠生 柳溪山 등 9명이 보인 皇朝人의 자부심과 효종의 후원으로 정착하였음을 서술하였다. 이들 諸公의 潔身의 節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본서를 편집하였다고 밝혔다. 본문은 9명의 성명, 선조, 출생지, 성장, 관력, 후금이나 이자성의 난에 대한 활약 등을 상세하게 기재하였다. 대체로 출생지에서 이자성의 난과 후금의 침입에 대항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싸우다 역부족으로 포로가 되고, 이어 심양으로 옮겨져 소현세자·봉림대군 등과 인연을 맺게 되어 소현세자 일행이 귀국할 때 함께 조선으로 들어왔으며, 왕실의 후원을 받아 정착한 후 에 대해 復讐雪恥하고자 노력하였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권말에 수록된 菱山 黃其天의 「皇朝遺民錄跋」은, 일찍이 箕子가 東來하자 의 유민이 따라와 동이에 중화의 문명을 전달한 것과 마찬가지로 명말의 뜻있는 이들이 조선으로 유입되어 멸청 의지를 높였지만 시세가 부득이하였음을 언급하고, 조선의 임진왜란 시 이 구원한 바를 언급하여 황조인으로서 자부심을 표현하였다. 또한 관련 내용이 소실될 것에 대비해 기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표지 이면에 “西紀一八一八戊寅 王德九撰 馮榮燮寄贈”이란 기록이 있어 왕덕구에 의해 본서가 편찬된 뒤에 풍영섭이 다른 이에게 기증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체제와 내용에 있어 장서각 소장 『皇壇參班遺臣諸家錄』(K2-493)과 편찬 과정에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명말청초 조선에 유입된 유민의 유입 과정과 배경을 살펴볼 수 있고, 조선에 정착하여 황조인으로서 가졌던 의식의 변화 과정과 조선인과의 관계도 파악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존주론과 대명의리론의 관점에서 반청의식을 높였던 조선 사회에 유민들의 거주 분포 및 자존감을 보여주는 사료이다.
집필자
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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