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은신군신도비명(恩信君神道碑銘)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90313.B02416402_1-DES.177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정조(正祖) 찬병서(撰幷書)
작성시기    :
1779 / 정조 3년
형태사항    :
크기: 40.9×27.9cm / 판본: 척인본(拓印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청구기호    :
K2-4929
M/F번호    :
MF35-4083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정조의 이복동생인 恩信君 李禛에게 ‘昭愍’이라는 시호를 증직한 1779년(정조 3) 이후 세워진 신도비를 拓本한 첩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된 拓印本이며, 同書 4部이고 A1-1, B1-1, C1-1, D1-1로 구별하였다. 표제는 ‘恩信君神道碑銘’이며 직접 묵서하였다. 표지는 민무늬의 갈색이고, 주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線裝으로 장정하였다. 자수는 4行7字이고,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A의 책수는 19張이며, 권수와 권말에 좀먹은 흔적들이 다수 보이고 있다. B·C·D는 20張이고, 본문에 약간의 충해 흔적들이 보인다.
체제 및 내용
 본서에는 표제와 비문의 4면을 탁본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에 ‘恩信君神道碑銘’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도비는 왕이나 고관들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은신군 이진(1755~1771)은 莊獻世子와 후궁인 良娣 林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제 임씨1899년(광무 3)에 ‘肅嬪’으로 追封되었다. 그는 정조의 이복동생으로 사후에 南延君이 그의 양자로 입적되어 興宣大院君의 조부가 된다. 1771년(영조 47) 앞서 영조를 충동질하여 장헌세자를 굶어죽게 한 金龜柱 일당의 무고로, 형인 恩彦君과 함께 관작을 박탈당하고 제주로 유배되어 죽었다. 1774년(영조 50)에 追復되고, 영조의 동생인 延齡君 李昍에게 嫡統으로 입적되었다.
 한 면에 4글자씩 크게 쓰인 글씨는 전서체로 ‘王孫恩信君禛昭愍公神道碑’라고 되어 있다. 뒤에는 한 면에 세로 4행, 가로 6열로 24글자씩 음각되어 있다. 품계는 承憲大夫로 五衛都摠府都摠管을 겸직으로 하였다. 후에 顯祿大夫로 加資된 것은 ‘昭愍’이라는 시호를 증직받은 1779년으로 보인다.
 이 비문은 정조의 친필로 작성된 것인데, 앞서 영조 대에 화를 입어 죽음에 이르게 된 그에 대한 애도와 회한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장서각 소장본 「恩信君昭愍公神道碑銘」(K2-4928)에는 중간 이후부터 결락되어 있는데, 본서에 전체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 후기 ·정조 대 정치사 및 壬午禍變과 관련된 당시 정국 운영과 관련이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연령군-은신군-남연군-흥선대원군-고종’으로 이어지는 혈통의 승계는 조선 후기 왕위 정통성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참고문헌
璿源系譜記略
承政院日記
日省錄
朝鮮王朝實錄
서울역사박물관 편,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서울역사박물관, 2007.
집필자
김동근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