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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태사묘사적(太師廟事蹟)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김계형(金啓亨) 편찬(編纂), 김요(金橈) 교정(校正)
작성시기    :
1685 / 숙종 11년
형태사항    :
크기: 30.0×18.8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2책(冊) / 인장정보: 藏書閣印,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77
M/F번호    :
MF35-390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안동太師廟에 奉祀된 金宣平, 權幸, 張吉 중에서 金宣平의 位次가 權幸의 상위임을 주장하는 각종 논거들을 모아 1685년(숙종 11)에 완성한 책이다.
서지사항
繼線 및 匡郭이 없는 楮紙에 필사하였으며, 필사자는 다섯 명 이상으로 보인다.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上·下’로 표기되어 있다. 서·발문 및 筆寫記가 없어 정확한 필사 연대를 알 수 없다. 제1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印’이, 제2책 제1면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안동 太師廟에 封祀된 金宣平權幸의 位次 문제를 놓고 1670년(현종 11)부터 안동김씨안동권씨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수십 년간 지속되었는데, 본서는 그 분쟁 와중에 편찬되었다. 본서의 직접적인 편찬 배경은 金橈의 太師廟文字에 구체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안동김씨金啓亨은 평소에 조상들을 위하는 마음이 컸는데 특히 太師廟에 奉祀된 김선평, 권행, 장길 중에서 김선평의 位次가 권행의 아래로 잘못되어 있는 사실에 크게 분개하였다. 이에 김계형김선평의 位次가 권행의 상위임을 주장하는 각종 논거들을 조사, 수집하여 본서를 편찬하고 김요에게 교정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김요는 부인의 상을 당해 본서를 교정하지 못했는데 그사이에 김계형도 세상을 떠났다. 결국 김요는 부인의 3년상이 끝난 1685년(숙종 11) 여름부터 본서를 교정, 보완하여 11월에 완성하게 되었다.
불분권 2책의 본서는 목록 없이 본론만 수록되었는데, 본론은 대체로 김선평의 位次가 권행의 상위임을 주장하는 각종 논거들이다. 맨 처음의 논거인 『史略』의 내용은 왕건 태조古昌甁山에서 견훤을 격파한 후, 古昌城主 김선평大匡에 임명되고 권행장길大相에 임명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김선평권행에 비해 관직과 서열이 높았음을 주장하기 위한 논거이다. 두 번째 논거인 『輿地乘覽』 역시 같다. 세 번째 논거인 功臣名에는 김선평장길이 2등 공신으로 수록되었고 권행은 3등 공신으로 수록되었는데, 이 또한 김선평권행에 비해 관직과 서열이 높았음을 주장하기 위한 논거이다. 이어서 「太師廟圖」가 수록되었는데 여기에는 중앙에 권행, 동쪽에 김선평, 서쪽에 장길이 配享되어 있다. 이 「太師廟圖」에 대하여 김요는 東上의 원칙에 따라 김선평의 位次가 권행보다 높은데 고려시대에 權門이 강성한 틈을 타 중앙의 권행김선평보다 높였는데 그 오류가 당시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이황(1501~1570)의 安東府三功臣廟增修記, 김상헌(15790~1652)의 與權慶州書 등 김선평의 位次가 권행보다 상위임을 주장하는 각종 논거들이 수록되어 있다. 반면 권행의 位次가 김선평의 위임을 주장하는 권문의 논거도 몇몇 수록되어 있지만 부차적이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 후기 안동김씨안동권씨의 씨족 의식 및 안동 지방의 鄕會運營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태사묘를 통해본 안동시 문화유산의 의미와 기능」, 이상현, 『실천민속학 연구』 9, 실천민속학회, 2007.
집필자
신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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