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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충장공유사(忠壯公遺事)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어병수(魚秉琇) 편(編)
작성시기    :
1872 / 고종 9년
형태사항    :
크기: 32.0×23.6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7.4×18.5cm / 인장정보: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2-474
M/F번호    :
MF16-292
기록시기    :
1872~1910年(高宗 9~隆熙 4)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71년(고종 8) 강화도에서 일어난 辛未洋擾 당시 魚在淵·漁在順 형제의 순국 전말을 담고 있다.
서지사항
四周雙邊, 半葉 10行, 無魚尾의 필사된 印札空冊紙에 필사하였다.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乾·坤’으로 기재되어 있다. 서·발문 및 筆寫記가 없어 정확한 필사 연대를 알 수 없다. 각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圖書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乾책의 권두는 1871년 4월 27일 진무사 鄭崎源의 장계로 시작된다. 신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침략 상황에 대해 언급하였으며, 魚在淵(1823~1871)·魚在順(1826~1871) 형제의 殉國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어재연鎭撫中軍에 임명되어 廣城堡로 급파되어 6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광성보에 부임, 미군과 대치하였으며 임전무퇴의 결의로 항전하다 殉節하여 兵曹判書知三軍府使에 추증되었다. 그의 아우인 어재순 역시 忠節의 公을 인정받아 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차제로 진무사 장기연의 장계가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洪淳穆이 入侍하여 고종에게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軍功을 기리는 내용이 전개된다.
신미양요와 어재연·어재순 형제 순국의 전말은 주로 진무사 정기원의 장계에 실려 있으며, 이어서 「江華學官士林票目」과 어재연·어재순 형제를 비롯하여 광성진을 방어하다 순절한 이들을 기록한 「廣城鎭把守」가 수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廣城祭儀定式」, 「祝文式」, 「傳令別驍士左右營」, 「別城隍祭祝文」, 「賜祭文」, 「致祭文」, 「廣城將臺祭文」 등은 당시 순국한 인물들의 업적을 현양하고 순국을 애도하는 祝文과 致祭文이다.
坤책은 李敦宇의 「兵曹判書忠壯公墓碣銘」과 「贈吏曹參議魚公墓碣銘」을 시작으로 하여 魚秉琇어재연의 일생과 행적에 대해 쓴 「先府君行狀」과 미상인이 어재연에 대해 쓴 「先府君行狀」이 각각 실려 있다. 이어 후손 魚秉玩어재순의 일생과 행적에 대해 쓴 「先府君行狀」이 한 편 더 있다. 이어 당시의 상황을 개괄한 「江都日記」가 있고, 李建昌이 찬한 「鎭撫中軍將傳 幷序」와 朴海明의 「魚鎭撫哀詞」, 洪暘錫의 「追輓魚忠壯幷序」, 朴致馥의 「魚忠壯公誄詞」, 卞東玉의 「追誄魚忠壯公」 등을 수록하여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忠烈을 기렸다. 卷末에는 金炳學, 申錫禧, 金馨集 등의 輓詩가 실려 있다.
특성 및 가치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업적과 함께 19세기에 가장 특기할 만한 사건인 신미양요의 전말을 상세히 기록한 중요한 자료이다. 무명의 순국선열들의 위업을 현양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어 더욱 주목된다.
집필자
김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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