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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충렬실록(忠烈實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정덕선(鄭德善) 등(等) 편(編), 이건식(李健植)·정복의(鄭福毅) 보간(補刊)
작성시기    :
1831 / 순조 31년
형태사항    :
크기: 32.3×22.5cm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3.0×18.2cm / 인장정보: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2-472
M/F번호    :
MF35-1237
기록시기    :
1831~1834年(純祖 31~34)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임진왜란 때 晉州城 戰鬪에 참가한 金時敏(1554~1592), 金千謚(1537~1593) 등 충의열사의 事蹟을 모아 엮은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및 版心題는 ‘忠烈錄’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乾·坤’으로 기재되어 있다. 朱色 卍字紋 표지와 黃絲로 粧䌙하였다. 書腦 하단에 ‘共二’라는 기록이 있다. 각 책 표지 우측에 ‘晉州府彰烈祠刊正’이라고 기록하여 진주 창렬사에서 간행하였음을 밝혔다. 앞표지 面紙에 “光武六年十一月十五日, 晉州府彰烈祠來呈, 忠烈錄貳卷, 當在本院掌禮官僚永久備覽以謝欽敬, 掌禮卿金世基記志”라는 1902년(광무 6) 창렬사에서 충렬록 2권을 바쳐 禮式院 관료들이 볼 수 있도록 비치하였다는 내용의 장례경 김세기의 藏書記가 있다. 제2권 충렬의사들의 실록 끝에 “辛卯 孟夏首陽鄭德善撰, 坡平尹台權書”라고 밝힌 글과 新增 자료 뒤에 “崇禎紀元後甲午孟夏 幼學臣李健植鄭福毅謹刊”이라는 간기를 통해 1831년부터 1834년 사이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권두에 1831년(순조 31) 4월에 淵泉 金履陽(1755~1845)이 쓴 서문에는 진주 지역 사림과 충렬의 후손들이 임진란의 진주성 사적이 흩어지고 탈락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적을 모아 간행한 경위를 밝혔다. 다음으로 目錄이 나열되었는데, 권1에 記로 守城記·陷城記가 있고, 疏로 請贈職疏, 啓로 請額啓·請春秋享禮啓·得印啓·請贈職定位次設齋室啓와 義巖事蹟碑銘이 있다. 권2에 狀으로 兩祠宇修改先報備邊司狀, 碑文으로 御製得印銘·印銘碑文·旌忠壇碑銘·全城郤敵碑銘·旌忠壇祠宇重修碑銘이 있다. 그리고 창렬사 치제 後感, 三忠祠, 矗石樓, 정충단 관련 感古詩와 忠愍祠彰烈祠의 致祭文, 정충단 祠宇 중수기문 등 祭文이 나열되었다. 그 밖에 「忠愍彰烈兩祠東西祠列位圖」, 「禮曹完文」, 「忠愍彰烈兩祠助享節目」, 「諸事蹟實錄」이 보유되었다.
목록 다음의 「八域誌」는 숙종 연간 진주목사 洪景濂의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다. 임진왜란 시에 왜군의 침략으로 순국한 의병 金千鎰, 崔慶會를 기려 사림들이 세운 忠烈祠숙종 연간 중수하기 위해 목사 홍경렴이 무장들에게 兵使의 지원을 청하였으나 수긍하지 않자 홍겸렴이 홀로 사당의 중수를 지휘하였다. 밤에 홍경렴의 꿈에 순국한 武將들이 일제히 나타나 치사하고 “公은 비록 문관이나 오히려 우리를 생각하며, 저 무장들은 돌보지 않으니 마땅히 죄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날이 밝아 들으니 병사들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여 기이하게 여겼다는 내용이다.
「팔역지」 다음에는 慶尙右兵使 崔鎭漢이 사당에 사제할 때 필요한 제복과 제기 등을 기록한 「祭服秩」과 「祭器秩」을 자세히 소개하고, 「營建秩」에는 충민사창렬사의 神門, 전사청, 제실, 제기고, 대문, 담장 改築에 들어간 物力이 총 792냥 3전 2푼, 米 112石 5斗, 租 85石 14斗 4升이었음을 밝혔다.
권1에서 1592년(선조 25)1593년(선조 26)의 2차에 걸친 진주성 전투에 관한 事蹟이 가장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 자료는 守城記, 陷城記와 계문이다. 이 중 「守城記」는 1차 진주전에 관한 내용으로 1592년 金時敏慶尙右道兵馬節度使가 되어 7일간의 攻防戰으로 진주성을 死守한 사실을 「全城郤敵碑銘」과 『龍蛇日錄』, 『中興志』, 『鄭泗川家乘』에서 해당 사료를 전거로 하였다. 「陷城記」는 2차 진주성 전투에 관한 내용으로 1593년 金千鎰, 崔慶會, 黃進, 張潤 등이 진주성을 사수한 사실을 「정충단비명」, 경상우병사 崔漢鎭의 상소, 『懲毖錄』에서의 기록을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다. 「請贈職疏」에는 殉節한 諸將 중에서 追贈받지 못한 巨濟縣令 金俊民 등 21인에 대한 贈職을 청하고 官妓 論介의 旌表를 청하는 疏와 이들이 祭享되던 祠宇의 賜額을 청하는 兵使 崔鎭漢 등의 12疏가 수록되어 있다. 「忠愍彰烈兩祠東西祠列位圖」에 의하면 金時敏·金千鎰 등 총 31인이 贈職되어 配享되어 있다. 권2의 말미에는 鄭德善이 찬하고 尹台權이 썼다고 밝힌 「事蹟刊錄記」가 있어 1831년(순조 31) 1차 수집 자료의 편집 및 필사 주체를 알 수 있다. 「事蹟刊錄記」 다음에는 新增 御製賜祭文과 충의열사의 실록이 보유되었다. 1833년(순조 33) 3월 11일 순조김시민김천일, 黃進, 최경회, 張潤 등에게 내린 제문을 유학 李健植, 鄭福毅가 추보하여 1834년(순조 34) 간행하였음을 밝혔다.
다음으로 진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황진, 장윤의 실록, 최경회의 실록과 묘갈명, 朴承男, 張胤賢, 梁濟, 金太白, 孫承善, 姜熙復, 李宗仁의 실록이 있고, 후에 尹鐸, 金介, 宋健道, 朱大淸, 朱夢龍, 鄭大輔, 宋悌, 朴世項 등 충의열사의 행적을 적은 실록을 補遺하였다. 본래는 충의열사의 실록이 어제사제문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수집·정리되었으나, 1834년 어제를 의도적으로 앞에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맨 끝부분에는 1831년(순조 31)에 4월 말에 河錫文의 跋文과 朴東貞의 後誌가 있으며, 金周翰이 필사하였음을 밝혀 충렬의사들의 자료를 편집하고 필사한 주체를 확인할 수 있다.
장서각 소장 『忠烈實錄』(K2-473)은 본서와 내용적으로 일치하지만, 어제사제문을 충렬의사들의 실록 뒤에 배치하고 유학 이건식정유의1834년(순조 34) 刊記 순서로 정리하였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벌어진 1, 2차 전투에 관한 사료를 집대성하였다는 점에서 임진왜란 및 진주성 전투에 대한 매우 중요한 연구 자료이다.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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