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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용천부충렬사제향삼십공행적성책(龍川府忠烈祠躋享三十公行蹟成冊)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용천부(龍川府) 편(編)
작성시기    :
1868 / 고종 5년
형태사항    :
크기: 35.5×23.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9.6×19.2cm / 인장정보: 龍川府使之印
청구기호    :
K2-447
M/F번호    :
MF35-1614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29년(순조 29) 龍川府忠烈祠를 건립하고 配享했던 30인의 행적을 기술한 책으로, 1868년(고종 5) 용천부에서 작성된 필사본이다.
서지사항
겉표지의 標題는 ‘忠烈祠三十公行蹟成冊’이고 속표지에는 “同治七年三月日龍川府忠烈祠躋享三十公行蹟成冊”이라는 刊記가 기록되어 있다. 同治 7년1868년으로 7월 3일 이후에 두꺼운 壯紙인 朱色 필사 인찰공책지에 필사한 책이다. 권말에는 “通政大夫行龍川都護府使龍川府 … …申(手決)”이라는 필사 기록이 있는데 申은 1866년(고종 3) 7월 12일부터 1870년(고종 7) 6월까지 직책을 맡았던 申杓이다. 앞표지에 표제는 ‘忠烈祠三十公行蹟成冊’이다. 본문에 官印인 ‘龍川府使之印’이 날인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평안도 용천부 소장본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본서에 기술된 30명은 모두 1627년(인조 5) 丁卯胡亂 당시 龍川에서 殉節하거나 공을 세운 인물들이다. ‘忠烈祠主享壯烈李希建事蹟’이라는 제목 아래 主享인 李希建(?~1627)의 행적을 가장 먼저 기록한 뒤, 나머지 29인은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고 추증 관직과 본관 및 정묘호란 당시의 행적을 차례로 서술하였으며, 각 인물의 행적 마지막 부분에 ‘純祖朝己丑躋享本府忠烈祠’라는 기록을 덧붙였다. 이희건은 본관이 延安으로, 자는 仲植이고, 시호는 壯烈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安州牧使·宣川府使를 지냈다. 1624년(인조 2) 龍川府使로 있을 때 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하여 振武功臣 2등으로 洪陽君에 봉해졌다. 1627년 정묘호란에 義州, 安州가 함락되고 용골산성이 포위되자 부하를 이끌고 분전하다가 전사했다. 左贊成에 추증되고, 숙종용천忠烈祠, 安州忠愍祠에 祭享되었다. 수록 인물은 李希建, 李立, 金佑, 鄭鳳壽, 張遴, 李光立, 金宗敏, 安浚, 安潤身, 李矗立, 張希範, 李忠傑, 安民善, 白瑋, 文愼言, 金德純, 張遇, 李介立, 金得汴, 李耆立, 孫義卿, 李忠亮, 金重國, 張希宗, 崔斗日, 張護世, 黃義男, 張希俊, 文汝卓, 張樞이다. 이 가운데 같은 성을 가진 인물들은 서로 친족 관계이다. 이들은 호란이 닥치자 함께 분전하며 용골성을 사수하여 승리를 이끌어낸 인물들이다. 책의 말미에는 江城君 文益漸(1329~1398)의 행적과 역대 임금들이 문익점의 묘에 致祭한 내용을 기록한 ‘忠宣祠主位事蹟’이 첨부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정묘호란 당시 용천부에서 벌어진 전투 상황을 연구하는 데 참조할 수 있고, 그동안 일실되었던 전란 참여자의 명단과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집필자
김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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