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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삼충실기(三忠實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익운(李益運) 편(編)
작성시기    :
1813 / 순조 13년
형태사항    :
크기: 30.6×19.9cm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9.2×15.1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22
M/F번호    :
MF35-123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丙子胡亂 때 전사한 金燁(1586~1637), 金煜, 金燦 3형제의 實記이다.
서지사항
卷末에 기재된 ‘崇禎後四癸酉’라는 刊記를 통해 1813년(순조 13)경에 목판으로 간행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책 제1면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병자호란 때 전사한 金燁, 金煜, 金燦 삼 형제의 實紀로, 한문 필사본이다. 金益運(1748~1817)이 서문을 썼다. 「金僉正遺事」, 「三烈士歲祭壇碑文」, 「告載尊揚碑文」, 「設壇時開土告辭」, 「歲祭壇始祭文」, 「設壇開土時僉正位家廟告辭」, 「書三烈士遺蹟後」, 「書三烈士遺事後」, 「三烈士歌」, 「義城三烈士傳」, 「金氏三烈士傳」, 「聞韶三烈士遺事後叙」, 「書三烈士碑壇記後」, 「書三烈士事蹟後」, 「聞韶三烈士傳後.」, 「書三烈士遺事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글의 연대와 내용으로 보아 1813년(순조 13) 이후 후손인 金泌璟에 의해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金燁 등은 金振古의 아들로 1620년(광해 12)에 모두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오르지는 않았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고 鳥嶺까지 갔으나 강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돌아갔으며, 병자호란 때 다시 의병을 모아서 전장에 나갔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죽은 뒤에 모두 主簿로 추증되었고 이듬해에 김엽僉正으로 加贈되었다. 「金僉正遺事」는 1752년(영조 28)에 후손 金敬天이 쓴 것으로 병자호란 때 김엽이 두 아우와 함께 순사한 일을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三烈士歲祭壇碑文」은 1796년(정조 20) 申體仁이 쓴 것으로 한 집안에서 세 명이나 국가의 위기에 목숨을 버린 것을 기리면서 詩를 附記하였으며, 김엽의 六世孫인 金鳳五, 金鳳來김엽 등의 무덤이 없는 것을 안타까이 생각하고 壇을 세워 제사 지내고자 하여 신체인에게 글을 청하였다고 하였다. 「書三烈士遺蹟後」는 1811년(순조 11) 柳範休(1744~1823)가 쓴 것이다. 「三烈士歌」는 鄭宗魯가 쓴 것으로 序와 7언의 한시로 구성되어 있다. 「書三烈士遺事後」 이하의 後書는 주로 8대손 金泌璟신체인이 쓴 「三烈士歲祭壇碑文」을 가지고 가서 청하여 얻은 글이다. 「書三烈士遺事後」는 1811년 金宏(1739~1826)이, 「義城三烈士傳」은 李敬儒가, 「金氏三烈士傳」는 姜世白이, 「聞韶三烈士遺事後.」는 1812년(순조 12) 金是瓚이, 「書三烈士碑壇記後」는 黃龍漢이, 「書三烈士遺事後」는 1812년 李羲發이 쓴 것이다. 이 밖에 「書三烈士事蹟後」는 韓致應이, 「聞韶三烈士傳後叙」는 洪義浩1813년 쓴 것이다.
특성 및 가치
관직에 있지 않았으면서도 나라가 위급한 것을 보고 의병을 모아 전장으로 달려갔던 한 집안의 삼 형제가 모두 나라를 위해 전사하였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충성심을 칭송하고 있다.
집필자
박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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