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삼인사적(三仁事蹟)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상일(李尙逸) 편(編)
작성시기    :
1668 / 현종 9년
형태사항    :
크기: 30.5×20.6cm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8×16.0cm / 인장정보: 帝室圖書之章, 舊宮,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20
M/F번호    :
MF35-1065
기록시기    :
1668年(顯宗 9)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李尙逸(1600~1674)이 경상도 善山 출신으로 仁을 실천한 金澍, 河緯地, 李孟專의 行蹟을 정리한 책이다.
서지사항
1668년(현종 9)에 쓴 宋時烈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나 판의 마멸 정도와 지질 등을 미루어 목판을 다시 조선 후기에 간행한 後刷本으로 추정된다. 앞표지에 표지 서명인 ‘三仁錄’이 필사되어 있다. 책 제1면 우측 상단에 ‘帝室圖書之章’이, 우측 하단에 ‘李王家圖書之章’과 원형의 ‘舊宮’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체제를 살펴보면, 먼저 李孟專의 후손인 李尙逸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 발문에 따르면 편집이 마무리된 지는 오래되었으며, 原襄觀察使, 즉 강원도관찰사로 있으면서 간행하여 善山에 보관한다고 하였다. 또한 세 위인의 행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흥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행한 것이라고 하였다. 1668년(현종 9)송시열이 지은 「三仁錄序」가 수록되어 있다. 송시열은 세 사람을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모두 사태에 직면하여 자신의 마음을 잃지 않았고 각기 본심에 편안한 것에 따른 것으로 天理에 부합하고 人欲이 없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하였다.
본문은 三仁事蹟으로 첫 번째는 籠巖 金澍에 관한 자료이다. 먼저 尹根壽崔晛이 찬술한 「籠巖先生」이 두 편 있고, 다음은 趙纘韓이 지은 「祭籠巖先生文」, 1632년(인조 10) 李埈이 지은 「籠巖先生來格詞」, 張顯光이 지은 「謁籠巖先生來格廟」, 柳時會가 지은 「祭籠巖 先生文」, 金潁達이 지은 「祭籠巖先生文」, 조찬한의 「謁籠巖先生來格廟」 2편, 이준의 「謁籠巖先生來格廟」 2편 등이다. 김주1392년(고려 공양왕 4)夏節使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쪽을 향해 통곡하고 끝내 귀국하지 않은 인물이다.
두 번째는 사육신인 河緯地(1412~1456)에 대한 자료이다. 먼저 秋江 南孝溫최현이 찬술한 「丹溪先生」, 장현광이 찬하고 李景節이 글씨를 쓴 「丹溪先生墓碣銘」, 조찬한의 「祭丹溪河先生文」, 하위지가 지은 「送徐剛中兄弟榮親歸大丘」와 「送直提學崔先生德之歸湖南故山」이 있고, 다음은 하위지가 과거에 급제할 때 제출한 對策文의 문제와 답안을 수록하였다.
세 번째는 李孟專(1392~1480)에 대한 자료이다. 먼저 「耕隱先生」이 있고 그에 대하여 1626년(인조 4) 外後孫인 최현의 발문이 첨부되어 있다. 이어 이맹전이 지은 「贈鄭比安仲虔韻」, 鄭仲虔의 「次李正言韻」, 佔畢齋 金宗直의 「次李正言」과 「和李正言韻」을 수록하였고, 말미에 『輿地勝覽』과 『彛尊錄』에서 이맹전에 관한 기사를 발췌하여 실었다. 다음은 金寧의 「奉安祭文」, 李埈의 「題一善志後」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김주, 하위지, 이맹전의 행적을 이해하는 기본 자료이며, 선산 지역의 문화적 풍토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이들은 선산月巖書院에 배향되었는데, 1630년(인조 8)에 창건된 이래 1637년(인조 15) 하위지가 추가로 배향되고, 1694년(숙종 20)에 사액되면서 이맹전이 배향되었다. 따라서 본서의 간행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필자
이동인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