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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밀양박씨문집(密陽朴氏文集)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박준영(朴準英) 등(等) 편(編)
작성시기    :
1860 / 철종 11년
형태사항    :
크기: 35.4×22.9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8.8×18.5cm / 인장정보: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2-415
M/F번호    :
MF35-1877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麗末鮮初의 朴剛生(1369~1422)부터 조선 중기의 朴承宗(1562~1623)에 이르기까지 密陽朴氏 관련 行蹟과 墓誌文을 모아 놓은 책이다.
서지사항
2권 2책의 필사본으로 표제는 ‘朴氏世乘’, 판심제는 앞부분은 ‘密陽朴氏世譜’이지만, 권수제는 ‘密陽朴氏文集’으로 되어 있다. 본문의 성격은 모두 墓道文字를 수록하여 통상의 世譜와는 다르므로 ‘密陽朴氏文集’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할 듯하고, 편찬 시기는 1860년(철종 11)경으로 판단된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乾·坤’으로 표기되어 있다. 書腦 하단에 ‘共二’이라는 기록이 있다. 본문은 청색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는데, 종이를 붙여 수정한 부분도 있다.
체제 및 내용
권두에 上卷 목록이 붙어 있고, 이어 南獻敎(1798~?)가 1859년(철종 10)에 지은 「密陽朴氏世譜序」, 후손 朴準英朴準三1860년(철종 11)에 각각 지은 「密陽朴氏派譜跋」이 있다. 이어 「密陽朴氏世譜識」가 붙어 있는데, 公洪道觀察使 朴鼎賢(1561~1637)이 1620년(광해군 12)에 지은 것과 朴承健(1609~1667)이 1662년(현종 3)에 지은 것이고, 이어진 발문은 朴長潤(1679~?)이 1742년(영조 18)에 지은 것인데, 이 세 편은 모두 舊譜에 붙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 범례가 있다.
권1의 처음에는 金羽根(1782~?)이 지은 서문과 「列聖朝受敎」가 붙어 있고, 이어 대제학 趙觀彬이 지은 「新羅始祖王墓碑銘」이 있는데, 박혁거세에 관한 것이다. 「副提學公遺書」와 「副提學公墓表」는 朴剛生에 관한 묘도문자이고, 「左參贊密山君朴公碑銘」은 박강생의 손자 朴仲孫(1412∼1466)에 관한 비명이다. 「禮曹參議朴公墓碣」은 박중손의 아들 朴楣(1433∼1493)에 관한 것이고, 「淑夫人晉山姜氏墓碣銘」은 박미의 부인에 관한 것이고, 「刑曹參判密城君朴公墓碣」은 박미의 아들 朴光榮(1463~1537)에 관한 묘도문자이다. 「吏曹判書大提學朴公碑銘」, 「文景公諡狀」, 「魯恩書院別廟躋享文」, 「魯陵舊事詩」, 「文景公寧越事蹟」은 모두 朴忠元(1507~1581)에 관한 묘도문자이다.
권2에 실린 「兵曹判書朴公碑銘」, 「文莊公諡狀」은 朴啓賢(1524~1580)에 관한 것이고, 「贈吏曹參判朴公行狀」과 「贈吏曹參判朴公碑銘」은 박강생의 아들 朴審問(1408∼1456)에 관한 묘도문자이다. 「先正臣宋相公時烈」은 광해군 때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부자가 함께 자결한 朴承宗을 신원시켜 달라는 송시열의 상소이다. 「領相公復官爵事蹟」은 박승종의 관작이 복관되는 전말과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肅愍公諡狀」과 「肅愍公朴公墓碣幷序」도 박승종에 관한 묘도문자이다.
密陽朴氏文集』은 장서각 소장 『密陽朴氏新羅事實』(K2-416)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密陽朴氏新羅事實』 말미의 ‘自申聖夏以下四詩開刊中漏落故追書而卽使開刊’이란 기록을 보면, 박충원의 6대 후손이 1차 간행 때 누락된 내용을 추가로 기록하여 다음 간행을 대비한 듯하다. 바로 여기서 누락된 ‘申聖夏以下四詩’가 『密陽朴氏文集』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이로써 『密陽朴氏新羅事實』의 편찬 시기를 짐작할 수 있으며, 두 자료 간의 관계도 확인할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밀양박씨 가문의 훌륭한 조상들의 행적을 드러내려는 爲先事業에서 작성된 것이지만, 여말선초부터 조선 중기까지 밀양박씨 인물들의 행적과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집필자
김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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