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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명의록(明義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김치인(金致仁) 등(等) 찬집(纂輯)
작성시기    :
1777 / 정조 1년
형태사항    :
크기: 35.3×22.9cm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정유자(丁酉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3책(冊) / 판식: 반곽(半郭) 24.7×16.8cm / 인장정보: 內賜之記,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410
M/F번호    :
MF35-153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正祖의 명으로 金致仁(1716~1790) 등이 1777년(정조 1) 정조의 즉위 과정과 관련된 인물들의 忠逆을 공표하기 위해 편찬한 책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明義錄’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上·中·下’로 표기되어 있다. 권수에는 남색으로 인쇄된 편제면이 있는데, ‘明義錄 丁酉(1777)仲春 芸閣活印’으로 되어 있다. 각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內賜之記’,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정조는 즉위 이전인 세손 시절부터 적대 세력의 반대가 있었을 뿐 아니라 왕위에 오르기 직전 대리청정에 대해서도 洪麟漢(1722~1776) 등의 반대에 직면하였다. 즉위 직후 그동안 자신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인 홍인한을 비롯해 鄭厚謙, 洪相簡, 李善海, 閔恒烈 등을 일차적으로 숙청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인 1776년(정조 즉위) 8월 『闡義昭鑑』의 규례에 따라 책을 편찬해서 홍인한 등의 역적 행위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하자는 좌참찬 黃景源(1709~1787)의 건의를 받아들여 의리 천명을 위해 본서의 간행을 추진하였다.
본서는 卷首에 「尊賢閣日記」와 「御製綸音」이 있고, 권1에는 「進明義錄箚」와 「進明義錄箋」, 「下纂輯諸臣傳敎」, 「都承旨洪國榮疏」, 「明義錄凡例」 등을 먼저 수록하였다. 이어 1775년(영조 51) 11월 癸巳부터 다음 해 1776년 6월 甲子까지 수록하였고, 권2에서는 1776년 6월 丙寅부터 1777년(정조 1) 4월 甲辰까지의 기록을 실었다. 「존현각일기」는 정조가 세손으로 있으면서 독서하던 곳에서 썼던 일기이다. 이 책을 편찬하면서 「존현각일기」를 포함시킨 것은 신하들이 알 수 없었던 일, 즉 金龜柱(1740~1786) 등이 자신을 위협했던 일 등을 밝히고, 정순왕후가 자신을 보호했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본서에는 먼저 홍인한 등의 죄상을 수록하였다. 홍인한 등은 영조의 세손 대리청정 하명에 대해 ‘三不必知說’을 제기하며 반대했을 뿐 아니라 세손을 협박하거나 정탐하였다는 등 죄상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삼불필지설’이란 영조의 대리청정 하명에 대해 홍인한이 “동궁은 노론·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이조판서·병조판서에 누가 좋은지를 알 필요가 없으며, 조정의 일은 더욱 알 필요가 없다.”라고 한 것으로, 이는 대리청정의 명령을 거두어 줄 것을 말한 것이었다. 본서는 이렇게 한편에서는 자신에 대해 적대적인 세력의 움직임을 역적으로 규정하는 한편 이들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도왔던 洪國榮(1748~1781)·鄭民始(1745~1800)·徐命善(1728~1791) 등의 공로를 소개한다.
마지막 부분에는 金鍾秀(1728~1799)가 찬술한 跋文이 수록되었는데, 여기서 김종수孔子가 『春秋』를 찬술한 의도와 같이 본서를 통해서 천하에 大義를 밝히고 세상의 이목이 훤히 알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이어서 본서의 찬집에 참여했던 金致仁을 비롯해 金陽澤·金尙喆 등 52명의 이름이 열거되었다.
특성 및 가치
영조정조 초의 복잡했던 정치 상황을 정조의 입장에서 정리한 책이다. 따라서 본서를 통해서 정조가 즉위 초에 정립하고자 했던 의리의 방향을 밝힐 수 있는 자료이다. 아울러 해당 시기 정치 세력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최성환, 「정조대 탕평정국의 군신의리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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