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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동양세고(東陽世稿)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신명화(申命和) 편(編)
작성시기    :
1863 / 철종 14년
형태사항    :
크기: 32.0×20.4cm / 판본: 목활자본(木活字本)(방전사자(倣全史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5권(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5×14.3cm / 인장정보: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2-405
M/F번호    :
MF35-160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申命和의 주도로 平山申氏 申礏을 필두로 申景祺, 申景䙗, 申堉, 申汝遇, 申汝逵 등이 남긴 글과 墓誌와 行狀을 엮어 1863년(철종 14)경에 간행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東陽世稿’이다. 표지는 황색 바탕에 卍字紋이며, 冊絲는 황색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全’이 표기되어 있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圖書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東陽황해도 平山의 옛 이름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申錫愚(1805∼1865)가 1863년에 지은 서문이 있는데, 신명화의 주도로 평산신씨 중에서 申槪(1374~1446)를 中祖로 하는 文僖公派의 松谷公 申礏(1543~1592) 이하 4세의 文藁와 誌狀을 수습하여 간행하게 된 내력을 기록하였다.
권1의 「松谷公遺蹟」에는 신급에 관한 行錄, 辨誣疏(癸未八月日), 行狀, 墓誌銘, 墓碣銘과 八谷 具思孟(1531∼1604)과 申瑞夏가 지은 두 편의 「輓詞」가 실려 있다. 신급의 자는 仲峻, 호는 松谷, 본관은 平山으로, 申砬(1546~1592)의 형이다. 1583년(선조 16) 동인 계열의 洪渾·禹性傳·金應南·朴謹元 등이 李珥·成渾·朴淳의 작은 과실을 사림의 공론으로 내세워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사악한 논의로 단정한 신급은 이것이 사림의 화를 불러일으킨다고 탄핵하는 辨誣疏를 올렸다. 당시 선조신급신립의 忠義를 칭찬하는 批答을 내렸을 정도였다. 변무소는 『癸甲日錄』(禹性傳)·『癸未記事』·『燃藜室記述』(李肯翊)·『混定編錄』(安邦俊) 등에 수록될 정도로 귀중한 자료이다.
권2의 「奉事公遺蹟」, 「伊川公遺蹟」은 신급의 두 아들 申景祺(1575∼1615)와 申景䙗(1587∼1664)에 대한 行錄, 行狀이다. 奉事公 신경기신급의 맏아들로 喪禮를 엄정히 준수했고, 祖母를 극진히 섬겼다. 伊川公 신경체신급의 둘째 아들로 武科에 급제해 伊川府使를 역임했다.
권3의 「養谷公遺蹟」에는 태사공 신경기의 둘째 아들인 養谷公 申堉(1602∼1677)에 관한 行錄과 行狀, 墓表가 수록되어 있다. 신육沙溪 金長生을 사사했고, 병자호란 후에 은거하여 ‘大明處士’라 自號하면서 시대를 개탄했으며, 遺逸로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권4의 「繼拙堂遺蹟」에는 「石室書院請額疏」와 行狀이 수록되어 있다. 「石室書院請額疏」는 金尙容金尙憲을 모신 石室書院의 賜額을 요청하는 疏이다. 繼拙堂申汝遇(1628∼1704)의 호이다. 양곡공 신육의 맏아들이며, 자는 天也인데, 지극한 효성으로 명성이 높았다.
권5의 「守拙堂遺蹟」에는 申汝逵(1638∼1703)에 관한 行錄과 墓誌銘이 수록되어 있다. 守拙堂 신여규양곡공 신육의 막내아들로, 풍모가 빼어나고, 효성과 우애로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권말에는 1863년(철종 14) 3월에 후손 신명화가 지은 발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발문에 따르면 弘文館校理 신명화가 여섯 선조의 世稿와 묘도문자를 수습해 두었다가, 1863년을 전후한 시기에 평산신씨 宗中에서 默菴 申球(1666∼1734)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이 『東陽世稿』를 함께 간행한다고 하였다.
특성 및 가치
평산신씨 文僖公派 일문의 가계와 행적을 상세히 알 수 있어, 그간 누락되었던 은일군자의 행적을 파악하는 보조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아울러 1583년(선조 16)신급이 올린 辨誣疏는 16세기 무렵 東人·西人의 갈등과 당쟁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된다.
집필자
김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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