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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사전(九義士傳)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왕희필(王熙弼) 저(著), 풍영섭(馮榮燮) 증보(增補)
작성시기    :
1967
형태사항    :
크기: 24.6×18.2cm / 판본: 유인본(油印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2-385
M/F번호    :
MF35-479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王熙弼仁祖 때의 鳳林大君潘陽에서 陪從하여 歸化한 명나라의 義士 아홉 명과 후손의 행적에 관한 자료를 1967년에 수집해 엮은 實記이다.
서지사항
내용을 橫書하였으며 洋紙에 謄寫한 한글본이다.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으며, 역시 등사되어 있다. 版心題는 ‘九義士傳’이다. 서문의 “西紀 1967年 2月下澣王庠主以文公第九代孫王熙弼謹識”이라는 기록을 통해 본 도서가 1967년에 등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뒤표지 이면에 “檀紀4300年三月一日著, 非賣品, 京畿道楊州郡榛接面八夜里 著者 馮榮燮”이라는 기록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의 저자는 서문과 머리말을 참조해 볼 때 왕희필임을 알 수 있다. 馮榮燮은 훗날 이 책을 증보한 사람이다. 본서의 체제는 권수에 1967년 2월 王以文의 9대손 왕희필이 쓴 서문과 머리말, 『구의사전』을 집필하는 데 참고했던 자료에 대한 기록이 있다. 왕희필이 『구의사전』을 저술한 목적은 종래의 한문 역사서를 알기 쉬운 한글로 펴내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 先祖의 사적을 널리 전하는 데 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 책을 인쇄하지 못했다. 본디 농한기를 틈타 완성하려 했으나 雨水가 지나자 마음이 조급해져 부득이 난필로 써서 등사하게 되었다.
‘九義士’, 즉 王美承·馮三仕·黃功(초명은 黃詮鄭先甲·楊福吉·裵三生·王文祥·王以文·柳溪山 아홉 명에 대해서는 李德懋(1741~1793)의 『靑莊館全書』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成大中이 『靑城雜記』의 「醒言」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을 옮긴 것이다. 淸나라明나라를 멸망시킬 때까지 효종瀋陽에서 10년간 볼모로 지내야 했다. 효종조선으로 돌아오면서 王鳳崗·王文祥·馮三士·柳許美·王美承·劉自成·裵成三·黃功 등 여덟 사람이 함께 따라왔다. 九의사는 이들 중 劉自成이 빠지고 鄭先甲楊福吉이 포함된 것이다. 효종은 그들을 本宮 곁에 살게 하고 벼슬을 주려고 했으나 그들은 거절하면서 명나라가 회복되는 날을 기다려 돌아가고자 했다. 효종도 강권하지 않고 宮에 머물게 하고 衣食을 제공하였고, 나중에는 訓局[훈련도감]에 소속시켰다. 이후 이들은 모두 일반 백성이 되었다고 한다.
본서의 내용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각 계통도 및 연대표」이다. 명나라 황실과 조선 왕실의 계통도, 효종대왕 및 九의사 연대 일람표를 실었다. 제2장은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의 원인과 이순신 장군의 海戰, 명나라의 구원과 의병, 정유재란, 명나라 東援軍 전투 서열 및 희생에 대한 기록이다. 제3장은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의 원인과 청군의 침략 경위, 에 항복, 봉림대군의 瀋陽館行 및 환궁, 無忘樓, 의 구원 계획, 척화신과 瀋陽陪從臣, 그리고 병자호란에 관한 昭顯世子, 鳳林大君, 肅宗大王, 洪翼漢, 尹集, 吳達濟, 金尙憲, 李敬輿, 李廷龜, 李回寶, 張維, 蔡聖龜, 鄭蘊, 鄭斗卿, 鄭雷卿, 趙錫澈, 宋時烈의 시를 수록하였다. 제4장은 「명나라의 멸망」이다. 1368년 주원장명나라를 건국한 사건부터 의종황제의 최후까지 명나라의 멸망 과정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또 국내에서 항전한 자와 東渡한 九의사 및 毅宗 황제·安宗 황제·紹宗 황제·永曆 황제를 따라 순절한 자들의 이름을 밝혀 놓았다. 제5장은 「九의사의 심양 억류 및 東渡」이다. 東昌 王庠生(왕미승), 臨구 馮庠生(풍삼사), 杭州 黃留守(황공), 瑯야 鄭進士(정선갑), 通主 楊庠生(양복길), 大同 裵庠生(배삼생), 靑州 王庠生(왕문상), 濟南 王庠生(왕이문), 大同 柳庠生(유계산)의 생애와 공적, 그리고 심양에 잡혀간 이유가 소개되어 있다. 아울러 황유수의 시, 정진사의 시가 실려 있다. 제6장은 「九의사 및 자손의 東渡 후 생활」이다. 仁祖 때부터 고종 시대까지 九의사와 그 후손의 생활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정에서의 처우, 일반 국민의 처우, 九의사 자손 상호간의 행사, 친목회, 明義會 등을 항목별로 기술하면서 結語를 마쳤다. 다음으로 諸詩를 수록하였는데, 馮學祖, 王德一, 王德九, 王修說, 王德元, 鄭錫杓, 裵晉珪, 諸公共和詩, 黃載謙의 詩 및 일반 유림들(李豊翼, 李憲明, 趙縉鎬, 金箕祚, 馮翰良, 金浩養, 朴齊性)이 九의사의 자손들에게 준 詩를 收拾한 것이다. 제7장은 「대보단」이다. 대보단의 연혁, 시설개요, 守直制度, 그리고 儀節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의절에는 陳設圖, 祝文, 樂章, 進香文, 祭文, 祭香時 執事들의 목록을 차례대로 제시하였다. 제8장 「만동묘」는 萬東廟의 연혁, 시설, 厓刻의 내용, 廟庭碑文, 祭文, 祝文, 諸詩를 수록하고 있다. 제9장은 「조종암」이다. 朝宗巖의 연혁, 시설 개요(부동산, 비문), 朝宗巖紀實碑文, 대통행묘의절, 구의행사의절, 諸詩를 수록하고 있다. 조종암의 위치와 약도는 권수의 목록에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조종암을 재건하기 위해 비용을 출자한 사람들의 芳名과 경비 수지 현황표를 실어 놓았다. 제10장 「九의사 각 世系 源流 및 주소도」에는 九의사와 그 후손들의 계보가 도표로 실려 있다.
특성 및 가치
본서의 제목은 傳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물전이 아니라 인물의 사적에 관련된 기록을 수집해 엮은 자료집의 성격이 강하다. 馮三仕의 10대손 풍영섭이 이 책을 증수하여 『(增修)九義士傳』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李德懋, 『國譯 靑莊館全書』, 民族文化推進會, 1978.
馮榮燮, 『(增修)九義士傳』, 구의사친목회, 1971.
(增修)九義士傳』, 馮榮燮, 구의사자손친목회, 보경문화사, 1987.
집필자
박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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