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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가헌(家憲)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873 / 고종 10년
형태사항    :
크기: 32.6×20.4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6×15.7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381
M/F번호    :
MF35-1541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대구서씨 徐文澤 가계에 전해지는 묘소 이장 과정을 비롯하여 선조들의 묘도문자, 각종 祭祀 節目 등을 필사한 책이다.
서지사항
四周雙邊, 10行,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의 목판 印札空冊紙에 필사하였다.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單’으로 기재되어 있다. 白色 楮紙로 만든 避諱紙가 부착되어 있다. 앞표지 面紙에 있는 ‘癸酉二月十七日 肇位移奉時追錄’이라는 筆寫記를 통해 본 도서가 1873년경에 필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각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贈贊成公緬禮始末」, 「家狀」, 「墓表」, 「墓碣」, 「墓誌」, 「丁卯籍」, 「癸酉籍」, 「壬午籍」, 「乙酉籍」, 「祭祀節目」, 「宗約」, 「會中錄」 등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수록된 「증찬성공면례시말」은 徐宗伋(1688~1762)이 작성한 것으로, 부친인 徐文澤(1657~1706)과 모친인 南陽洪氏(1657~1701)의 묘소를 遷葬한 시말을 기록하였다. 이에 따르면, 서문택과 부인의 묘는 경기도 파주에 임시로 장사 지냈다가 이후 양근으로 옮겼고, 최종적으로는 1752년(영조 28)충청도 온양으로 이장하였다.
「家狀」을 비롯해 「墓表」, 「墓碣」, 「墓誌」 등은 서문택의 묘도문자로, 「家狀」은 徐宗集이 작성했고, 「墓表」는 서종급이 찬술한 것을 증손인 徐懋修1757년(영조 33) 8월에 글씨를 썼다. 「墓碣」은 大提學 李縡(1680~1746)가 찬술했고, 大司憲 洪鳳祚(1680~1760)가 글씨를 썼으며, 右議政 兪拓基(1691~1767)가 篆額을 썼다. 「墓誌」는 判中樞府事 李宜顯(1669~1745)이 지었는데, 역시 서종급이 遷葬 사실을 보충하였다.
이 밖에도 「祭祀節目」은 光州公이 마련한 定式으로 세속을 좇아 豊侈을 따르지 말고, 誠敬淨潔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고, 「宗約」은 辛巳獄事를 생각지 않고 徐命膺(1716~1787)의 후사가 된 徐彙修와 조상을 망각한 徐樂修를 祠堂에 들이지 말게 할 것을 결정한 내용을 적은 문서이다. 「會中錄」은 徐命載를 비롯해 徐命仁 등 약 28명이 참석하여 논의한 墓祭의 輪回 방법과 참여 자격, 불참할 수 있는 사유 등을 명시한 것이다. 「회중록」 뒤에는 회의에 참석했던 서명재 등의 자와 호, 생년월일을 기록하였다. 마지막에는 ‘癸酉二月十七日, 祧位移奉時追錄’이 보이는데, 祧廟에 배향된 서문택의 위패를 移奉할 때 소요된 각종 물품들의 숫자를 파악한 것이다.
특성 및 가치
18세기 대구서씨 가문에서 행해진 천장의 과정을 비롯해 가문의 유지를 위한 노력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당시 사회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던 가문 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이다.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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