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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부난민작경시민인사상여관사공해민가즙물소화파실구별성책(城津府亂民作梗時民人死傷與官舍公廨民家汁物燒火破失區別成冊)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양인욱(楊麟郁) 편(編)
작성시기    :
1900 / 광무 4년
형태사항    :
크기: 27.0×19.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5×15.6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325-2
M/F번호    :
MF35-624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00년(광무 4) 城津府에서 발생한 民擾로 인하여 破壞·燒失된 公廨·民家 및 汁物 등을 富寧郡守 양인욱이 조사하여 보고한 조사 기록이다.
서지사항
題籤은 四周가 목판에 인쇄된 종이에 ‘城津府民擾時公公廨民家汁物成冊’이라고 필사되어 있다. 表紙는 푸른 바탕에 龜甲 무늬로 이루어져 있다. 內題는 “光武四年(1900)陰曆七月日城津府亂民作梗時民人死傷與官舍公公廨民家汁物燒火破失區別成冊”이다. 본문은 版下口에 ‘李王職實錄編纂用紙’라고 인쇄된 회색 원고지에 내용이 필사되어 있다. 책말에 ‘査官富寧郡守 楊麟郁’이 기재되어 있고, 그 아래에 ‘富寧郡守之章’이 그려져 있다.
체제 및 내용
1900년 표제는 ‘城津府民擾時公公廨民家汁物成冊’이며, 卷末에 당시 성진부에 파견되어 조사하였던 부령군수 양인욱이 ‘査官富寧郡守楊麟郁’이라 표기되어 있다. 본서와 같은 사건에 대한 조사 보고서(奎16029)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는 작성된 후 觀察使咸鏡北道裁判所 判事에게 보내졌다. 城津府의 民擾는 城津吉州의 통합·분리로 인한 부민 간 갈등으로 발생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鄕校儒生 간 갈등이 겹쳐 민요가 발생하였다.
城津은 본래 吉州 소속이었으나 1701년(숙종 27)에 防禦營 설치로 분리되었다가 1714년(숙종 40) 다시 길주에 복속되었다. 1746년(영조 22)1749년(영조 25)에 통합·분리되었다가 1900년(광무 4) 1월 23일 성진부길주군을 통합하여 길성부가 설치되었는데, 같은 해 5월 16일 길성부가 폐지되고 성진부가 복설되었다. 城津本邑에서 떨어져 나간 松下·松上 諸處 民戶 1,800余 家가 新邑에 附庸되기를 반대하는 合郡運動을 벌이다가 城津府의 방해로 좌절되자 일으킨 민란은 조기에 진압되었으며, 민란의 조사는 당시 富寧郡守로 있던 양인욱明川郡守였던 李翼鎬가 각각 담당하여 양인욱1900년 9월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소요로 인해 수많은 死傷者가 발생하고 民家·公廨가 훼몰되었는데, 본서는 물건에 대한 훼몰 사항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구성은 東軒, 主事官房, 鄕廳, 書記廳, 警務廳 등 각 관청의 燒火 및 汁物破失 현황을 기록하고, 다음에 각 里별 家戶別 家屋, 汁物에 대한 피해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데, 12개 里에서 피해 인원은 173명이다.
특성 및 가치
광무 연간 지방 제도를 개편하면서 군사 조직과 일원화시키는 방안이 강구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향촌 사회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현상이 빈번하였다. 이 시기의 지방 통치 및 행정조직 개편 과정에서 향청 및 향교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반발하거나 찬성하였던 양태를 잘 보여주는 자료로 향촌사회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집필자
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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