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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한심일기초(漢瀋日記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대수(李大樹)·허수(許遂) 등(等) 저(著)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31.0×19.2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2×15.9cm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309
M/F번호    :
MF35-742, 1564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李大樹 등이 『東宮兩大君瀋陽潛邸時與僚屬修稧作帖』과 『南漢日記』, 『瀋陽日記』를 抄錄하여 합본한 것이다.
서지사항
표제와 내제는 ‘瀋陽日記抄’이다.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개장한 표지의 서명은 제첨 없이 필사하였다. 청색 구 표지가 남아 있으며, 구 표지의 서명은 종이 제첨에 표기하였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흑색 목판 인찰공책지에 작성되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南漢日記』와 『瀋陽日記』를 抄錄하여 합본하였으나, 실제로는 『東宮兩大君瀋陽潛邸時與僚屬修稧作帖』이 冒頭에 별도로 차제되어 있다. 『南漢日記』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체험하고 본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瀋陽日記』는 昭顯世子鳳林大君, 麟坪大君을 호종하며 瀋陽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南漢日記』와 『瀋陽日記』는 각각 守御左別將 李大樹翊衛司司禦 許遂의 저작으로 추정된다.
東宮兩大君瀋陽潛邸時與僚屬修稧作帖』은 소현세자봉림대군·인평대군심양에서 여러 신하와 생사를 함께하고 형제와 같은 정의를 나누며 동고동락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稧帖이다. “天道好還, 苦盡甘來, 東旋之後, 與諸君按稧定坐於仁山智水之間, 擧杯樂太平”이나 “諸兄弟其勖之哉”와 같은 기록은 還國에 대한 이들의 염원과 서로에 대한 친밀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어서 修稧를 기념하여 제작한 시가 실려 있는데, 소현세자, 봉림대군, 金尙憲, 이대수, 吳達濟, 朴寅觀, 鄭蘊, 邊大中의 작품이 차제되어 있다. 이 중 오달제는 「思親詩」, 「思君詩」, 「思兄詩」, 「思室人詩」 4수를 제작했다.
이어서 『南漢日記』가 차제되어 있다. 기사는 1636년(인조 12) 12월 14일에 적병 중 告軍 300騎가 慕華館에 먼저 이르러 和親을 알리는 시점부터 시작되는데, 마지막 부분에 守御左別將 이대수千摠 허수의 역할을 자세히 기록한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12월 15일 적병이 都城을 핍박하자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내용이 이어지며, 익년 1월 8일에 조정의 의론이 和親으로 기우는 부분까지 기록되어 있다. 1월 8일 기사 뒤에 일기를 멈춘 이유를 “自初九日以下, 燒火未錄耳”라 적고 있다.
南漢日記』의 저자는 守御左別將 이대수가 분명하다. 일기 중에 이대수허수에 관한 기록이 상당량을 차지하며, 특히 이대수의 立論과 武勇이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12월 20일 기사에는 이대수가 자신을 ‘余’라고 표현하며 서술하고 있고, 마지막 기록인 1월 8일 기사에서는 “大樹以武夫, 雖無知識, 心中亦不無涇渭, 白主將曰… … ”이라 하며, 척화의 당위성을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다. 아울러 『東宮兩大君瀋陽潛邸時與僚屬修稧作帖』의 전반부에 “그중 이대수허수는 인척이 아닌데도 世交가 돈독하다.[其中李·許兩人, 非戚而世誼也]”라는 기록이 보이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瀋陽日記』가 수록되어 있다. 冒頭에는 “昭顯世子, 鳳林大君, 麟坪大君”이라 적혀 있고, “入瀋時, 昭顯世子命選許遂.朴烱, 於九連城陪來”라는 주석이 附記되어 있다. 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瀋陽入來陪從秩』이 보이는데, 동궁과 대군을 배종할 文宰와 武宰, 文學, 司禦, 翊衛司司禦, 宣傳官, 武兼邊宥, 講院을 위시하여 醫官, 譯官, 禁軍, 義州人, 淸譯, 長番, 別監, 飯監, 薛里, 燈燭色, 官奴, 廚子, 禮房, 工房, 司僕馬, 公贖人, 驅人, 刷馬 등의 성명이 나열되어 있다. 그 중간에 “翊衛司司禦別薦三人, 許遂·李大樹·朴烱”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瀋陽日記』는 1637년(인조 15) 2월 1일 東宮과 大君을 陪從할 인원을 선발하는 기사를 시작으로, 1645년(인조 23) 3월 10일 한양으로 돌아올 때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누락된 날짜가 많아진다. 9년 동안의 심양 체류 기간에 볼모로 끌려간 이들의 구체적인 생활상과 심리 상태가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
瀋陽日記』는 허수의 저작인 것으로 보인다. 1637년 2월 1일과 3일 기사에는 翊衛司司禦로 선발된 허수·이대수·박경에게 인조가 下敎한 내용과 東宮을 入侍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필자가 ‘臣流涕奉敎而退’라 적고 있으므로 『瀋陽日記』가 이들 중 한 명의 저술임이 분명하다. 이후 박경에 관한 기술은 거의 보이지 않고, 허수이대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640년(인조 18) 3월 1일 기사에는 허수가 胡人과 함께 角抵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彼左我右, 彼來我却, 至雖合, 走出戱場外, 滿庭胡人呵呵大笑, 遂就班而坐”라 적고 있다. 여기서 ‘我’는 바로 허수를 가리키므로 그가 바로 『瀋陽日記』의 찬자인 것이다. 1644년(인조 22) 9월 19일부터 11월 13일까지 허수는 두 달에 걸쳐 問安使로서 漢陽에 다녀오게 되는데, 이 기사 또한 허수의 저작임을 입증해 준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武將이 쓴 저술이고,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쓰여졌으므로 당시 조선청나라 간의 외교 양상을 파악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 그러나 심양에서의 東宮과 大君, 陪從臣의 구체적 생활상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 자료다.
참고문헌
文科榜目
司馬榜目
增補文獻備考
韓.劤 외, 『譯註經國大典』,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집필자
박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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