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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김시양(金時讓) 저(著)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29.1×19.5cm / 판본: 전사본(轉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1책(冊)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307
M/F번호    :
MF35-206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金時讓(1581~1643)이 선조 말부터 광해군을 거쳐 인조 초반까지의 사실을 모은 역사서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고, 권수제면 우측 하단에는 인장을 도할한 부분이 있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종이에 필사되어 있으며, 주색으로 교정하거나 종이를 도할하여 수정하였다. 또한 서미에도 ‘疊’으로 표기하여 중첩된 부분을 나타내거나 첨지를 부착하기도 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2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序·跋文 및 목차가 없다. 1611년(광해 3) 겨울 기사에서 시작하여 1612년(광해 4) 金直哉의 옥사로 끝나지만, 2년간의 기록이 아니라 광해군인조 전반기의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김시양의 同年인 全有亨이 醫學에 밝았고 黍稷에 대해 鄭經世홍문관에서 논의한 이야기, 東海에 조석 간만의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 李睟光 일화, 임진왜란 때 成泳의 활약, 1621년(광해 13) 후금遼東을 함락하고 명나라 毛文龍龍川에 주둔한 일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선조 후반기 기록도 보이는데, 광해군이 春宮에 있을 때 선조가 그 昏庸한 것을 보고 후사로 삼기를 망설였고 이 틈에 유영경이 用事했다는 기사, 李廷馣전라감사로 있을 때 왜적이 沈惟敬을 통해 和親을 청한 일, 1591년(선조 24) 臺諫이 鄭澈을 탄핵하고 李山海가 그 논의를 주동했던 일과 여기서 南北 分黨이 이루어졌던 일을 특기하였다.
광해군 대에는 1612년(광해 4) 봉산군수 申慄의 무고로 시작된 김직재의 옥사와 晉陵君 추대설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고, 1617년(광해 9) 李爾瞻이 주도한 廢母論의 전개가 수록되어 있다. 李适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광해군부터 1924년(인조 2) 난을 일으키는 상황까지 정리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대체로 선조 후반에서 인조 초반까지의 기록으로 다른 사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사실이 많지만, 책 제목처럼 엮은이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사실을 다룬 편집본이라는 점에서 저자 김시양 연구에 도움이 된다.
집필자
오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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