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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징비록(懲毖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유성룡(柳成龍) 찬(撰)
작성시기    :
1647 / 인조 25년
형태사항    :
크기: 32.3×20.9cm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6권(卷) 6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1×19.1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295
M/F번호    :
MF35-1337~133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柳成龍(1542~1607)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1592~1598년(선조 25~31) 7년간의 기사로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저자가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지낼 때 저술한 것이며, 외손자 趙壽益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저자의 손자 元之조수익에게 부탁하여 1647년(인조 25)에 간행한 것으로 자서가 있다. 처음에는 1633년(인조 11) 아들 柳袗이 『西厓集』을 간행할 때 수록하였고, 이후 다시 16권의 『징비록』을 간행하여 원본의 체제를 갖추었다는 설도 있다.
체제 및 내용
‘징비’란 『시경』 小毖篇의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딴 말이다. 본서의 내용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의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임진왜란 이전의 대일 관계에 있어서 交隣에 관한 내용도 일부 기록되었다. 그것은 그 배경을 소상하게 밝히기 위함이다.
징비록』은 본서 16권본 외에 異本 1종이 있다. 『芹曝集』·『軍門謄錄』을 제외한 『징비록』 본문과 『錄後雜記』만으로 된 2권본이 있는데, 간행 연대의 선후는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유성룡 자신이 생전에 쓴 『징비록』 서문에 “매양 지난 亂中의 일을 생각하면 황송스러움과 부끄러움에 몸 둘 곳을 알지 못해 왔다. 이에 한가로운 가운데 그 듣고 본 바를 대략 서술하였으니, 임진년(1592)에서 무술년(1598)에 이르기까지의 것으로 모두 약간의 분량이다. 이에 따라 狀啓.疏箚.文移 및 雜錄을 그 뒤에 부록하였다.”라 한 것으로 보아, 이본 2권은 내용이나 체제가 缺本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자손들이 초간 『징비록』에 『근포집』과 『군문등록』을 빼놓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본서는 『징비록』 상·하 2권, 『근포집』 2권, 『辰巳錄』 9권, 『군문등록』 2권 및 『녹후잡기』로 구성되어 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관계 문서가 붙어 있다. 『근포집』은 저자가 올린 箚子 및 啓辭를 모은 것이고, 『진사록』은 임진년(1592)에서 계사년(1593)까지 종군하는 동안의 장계를 수록한 것이다. 그리고 『군문등록』은 1595~1598년(선조 28~31)에 저자가 도체찰사로 재임하는 중의 文移類를 모은 것으로 여기에 自序와 自跋이 들어 있다. 『녹후잡록』은 임진왜란 7년 동안 저자가 듣고 본 사실들을 수필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특성 및 가치
임진왜란 때 유성룡의 위치나 책의 내용으로 보아 임란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1695년(숙종 21) 일본 京都 大和屋에서 중간되었으며, 1712년(숙종 38) 조정에서 『징비록』의 일본 수출을 엄금한 일이 있다. 1936년 조선사편수회에서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종가 소장본인 유성룡 자필의 필사본을 朝鮮史料叢刊 제11집에 『草本懲毖錄』이라 하여 300부를 영인하였다.
참고문헌
文宗實錄
東國兵鑑要解」, 崔南善, 『東國兵鑑』 2冊, 朝鮮光文會, 1911.
동국병감해제」, 金鍾權, 『동국병감』, 한국자유교양추진회, 1972.
임홍빈·유재호·성백효 역, 『동국병감』,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4
동국병감」, 정해은, 『한국 전통병서의 이해』, 군사편찬연구소, 2004.
집필자
박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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