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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조선사정(朝鮮事情)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왕직 실록편찬실(李王職 實錄編纂室) 편(編)
작성시기    :
1910
형태사항    :
크기: 26.9×19.5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5×15.6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287
M/F번호    :
MF35-855
기록시기    :
1910~1935年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일제강점기 李王職에서 구한말 조선의 국내외 정세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서지사항
藍色 龜甲紋 표지에 테두리를 목판으로 찍어 表紙書名을 필사한 題籤이 있다. 版下口에 ‘李王職實錄編纂用紙’가 인쇄된 회색 원고지를 접어 五針眼으로 線裝하였다. 33면까지 한자 병용한 일본어 가타카나로 기술되어 있으며, 34~35면은 1876년(高宗 13) 일본 공사가 작성한 후서로서 ‘梁川居士重識’라고 표기되어 있다. 권말에 明治 9년에 쓴 識를 통해 1876년에 필사한 책임을 알 수 있다.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의 첫 장에서는 ‘1866년 佛國(프랑스)이 한국을 정벌할 군대를 출병한 근원’이라는 제목으로 병인양요가 일어난 연원을 기술하고 있다. 러시아(峨羅斯國)가 근래에 만주(韃靼) 지방을 빈번히 침략하고 조선(高麗國)함경도 국경 지역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1866년(고종 3)에 급기야 러시아의 함선이 울산에 와서 자국 상인의 자유로운 왕래와 통상을 요구하는 서신을 조선 정부에 전달하였다. 이때 조선청국(支那)의 속국인 상태여서 청국의 허락 없이는 통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조선러시아의 군사력이 강함을 알고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이때 조선은 왕이 나이가 어려 대원군이 섭정하고 있던 때인데, 중앙 정부에 西敎를 믿는 관료들이 몇 명 있었다. 조선 조정의 몇몇 인사는 이들 서교 관료와 신부(僧正)를 이용하여 프랑스를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고, 이후 러시아의 함선도 스스로 물러가 서교 세력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구나 서교는 점차 세력이 강해지고 있던 상황이어서 정부는 신부를 비롯한 서교 신도들을 학살하였다. 「佛國이 한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함」이라는 글에서는 아홉 명의 프랑스 신부를 죽이고 수천 명의 신도를 학살한 병인박해로 인해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죽은 아홉 명 외에 세 명은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중국으로 도망갔는데, 이 가운데 리델(Ridel)이라는 신부가 청국에 소재하고 있는 프랑스의 관리에게 이것을 고하였다. 이에 프랑스의 해군제독인 로제(Roze)조선을 침략하고자 9월 18일 함대 세 척을 이끌고 京城까지 와서 지도를 그리고 돌아갔다. 그러다 다시 10월 11일 군함 일곱 척을 이끌고 강화도를 무력으로 침략하여 값비싼 그림과 서책을 약탈하였다. 이에 조선 정부가 군대를 이끌고 전투를 벌여 한 달여 만에 프랑스의 함대가 퇴각하게 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중간에 프랑스에서 발간된 신문 기사도 일역으로 기재되어 있다. 「米國(미국)이 한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함」이라는 글에서는 미국 선박이 조선 연안에서 좌초된 사건(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말미암아 고려국을 무력으로 침공한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미국은 여러 번 통상 요구를 하였으나 조선이 이를 거절하자 1871년(고종 8) 군함 다섯 척을 이끌고 강화도를 침공하였으나 조선 군대의 포격을 받고 물러났다가 다시 협상을 요구하면서 강화도를 점령하게 된다. 그러나 끝내 조선이 개항을 거부하자 미국 함대도 스스로 퇴각하였다. 「英佛同盟 北京 함락에 관한 보고」에서는 영불 양국의 연합군이 1858년(철종 9) 天津條約을 수정하고 다시 北京條約을 맺기까지의 경과를 기술하고 있다.
특성 및 가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그리고 중국의 북경조약 체결 등 19세기 후반 격동의 조선 말기 역사를 비교적 세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문헌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일제가 조선에 대해 어떤 전략으로 침략을 계획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을 ‘高麗國’으로 지칭하고 있는 점, 연도를 모두 서기로 표기하고 있는 점, 서울 등의 명칭을 발음대로 가타카나로 병기하고 있는 점 등은 당시 일본이 역사 서술에서 상당히 체계적이고 일관된 서술 방식을 수립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이기백 저, 『한국사신론』, 일조각, 1990.
한국근대사학회 저, 『한국근대사강의』, 한울아카데미, 1997.
집필자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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