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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북양아문담초(北洋衙門談艸)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남정철(南廷哲) 편(編)
작성시기    :
1885 / 고종 22년
형태사항    :
크기: 23.7×14.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7.2×11.1cm / 인장정보: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2-209
M/F번호    :
MF35-32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南廷哲(1840~1916)이 1884년(고종 21)북양대신 李鴻章(1823~1901)을 만나 商務와 청국의 藩衛, 대원군 환송 등에 관해 필담한 내용을 적은 글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北洋衙門談艸’로 되어 있다. 권말 기록 중 左贊成 閔台鎬 등, 通商交涉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 1882년(고종 19)부터 1884년경 사이에 작성한 내용이지만, 본문과 籤紙의 紙質 등을 통해 볼 때 1900년대에 정서한 것으로 추정된다. 上下向黑魚尾가 있는 木板 粉紅色 인찰공책 洋紙를 사용하였다. 誤字는 刀割 후 흰색 洋紙를 덧대어 수정하였다. 진홍색 洋紙에 주를 적은 첨지가 있다. 권수제 우측 상단에 ‘藏書閣圖書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남정철이홍장의 문답은 첫 칸에 각각 ‘南’, ‘李’라고 작은 글씨로 쓰고 다음 줄부터 한 칸을 내려 썼다. 경우에 따라서는 겹줄로 세주를 달았다. 「海關道盛宣懷初次來舘談艸」와 「額勒精額來舘談艸」가 부록되어 있다.
남정철은 갑신정변 당시에는 金允植과 함께 청나라 병영에 가서 金玉均 등 개화당의 축출을 위해 출병을 요청하였다. 정변의 실패 후 수구파 중심의 정부에서 호조참판에 기용되었다. 그해 冬至副使가 되어 韓露修好通商條約 비준 사건의 양해를 구하는 고종의 친서를 휴대하고 天津으로 가서 북양대신 이홍장의 동의를 얻었다. 이 필담은 바로 이때 남정철청국이홍장을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의 일부이다.
1884년(고종 21) 7월 15일에 동지부사로 임명된 남정철은 11월 2일에 하직 인사를 하고 청국으로 출발하였다. 보정부 문안의 사명도 띤 그는 19일에 재주관 이용준을 데리고 북양아문에 가서 자문 두 통과 어찰 한 통을 전한 후에 이홍장과 대담하였다. 교통편과 방문 목적에 대한 말을 주고받은 후에 이홍장러시아이탈리아의 통상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먼저 언급하면서 러시아의 出力을 우려하였다. 이에 대해 남정철은 어찰의 내용을 소개하였다. 러시아공사와의 육로통상 협의에 관한 것으로, 중당의 협조를 요청하였다. 訂約할 때에 외무독판 및 제협판은 辦理穆을 방조할 뿐이지 무슨 출력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면서 그 가능성을 일축한 남정철은 이번 방문의 목적이 商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청국의 藩衛에도 있음을 밝혔다.
조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청국은 전통적인 우호 관계에 따라 一室로서 衛護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의지할 사람은 오직 합하 한 사람뿐이라고 한 그의 말에서 당시 국제 정세에서 조선이홍장에게 상당히 의존적인 태도를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이홍장은 기밀을 요하는 말은 수시로 필담을 주고받으면 되나, 그렇지 않은 사건은 진해관도에 속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즉답을 피했다. 그러자 남정철조선청국을 섬긴 오랜 전통을 강조하고 임오지변 때의 원조를 사례하면서 조선청국에 대해 사대의 예를 등지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다. 또한 일본과 서양 제국의 외교 관계, 그리고 지난 해에 조약을 개정하기로 한 약속 등에 대한 전말을 진술하였다. 당시는 청국조선 속방 문제가 민감한 현안이었으므로 청국에 대한 조선의 사대가 강조되는 측면이 있었다. 중국이라 하지 말고 天朝 혹은 上國이라고 하도록 요구한 것도 조선청국의 속국임을 공인하고자 한 것으로 이 필담에서도 그렇게 칭하고 있다. 반면에 조선고종을 가리킬 때에는 ‘敝邦’, ‘寡君’이라 칭하였다.
이러한 양국 관계 속에서 남정철이 언급한 바, 불령한 무리들이 원한을 풀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설에 대해, 이러한 사실은 청국이 통연히 이미 양찰하고 있는데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조선 사정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였다. 청국인 周家祿조선 영접사에게 준 시 한 구절, 즉 “陰謀捨周者 誠萬萬屈抑”을 들면서 반청에 대한 혜량을 바란 것은 갑신정변 이후 반청파의 등장으로 청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조선의 현실 인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홍장은 이 문제에 대해 태서 각국과의 통상조약 체결을 권한 것은 일본을 견제하여 농단 병탄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新黨 한 무리가 저들의 사주를 받아 사대를 이간질하는 음모에 국왕과 元老宿德이 현혹되지 말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다음으로 남정철은 네 가지 사항을 건의하였다. 첫째, 商務에 대한 사항이다. 조선은 이익을 이웃 나라에 빼앗기고 백성은 곤궁하여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상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 상무 일반을 알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다. 둘째, 조선에 이익이 되는 상무의 규례 및 방략을 가르쳐 달라는 청이다. 셋째, 청국에서 활동하는 조선인 販商의 入送 절차와 규례를 정하는 일이다. 넷째, 중국의 세무와 해관의 정형을 시찰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요청이다. 남정철은 또 고종이 명한 보정부 문안에 관한 건을 설명하고 태공을 석방하여 돌려보낼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 문의하였다. 이에 대해 이홍장대원군을 석방하여 돌려보내는 일은 자신에게 그 권한이 있으나 10월설은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하면서 이홍장은 국왕과 정부 및 왕비에 대해서도 운운하였으나, 여기에는 생략되어 있다. 끝으로 지난해 서울에서 있었던 최택영의 命案에 관한 일을 사과하였다.
「海關道盛宣懷初次來舘談艸」는 5월 16일 하오에 해관도 성선회가 처음으로 남정철 일행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찾아와서 나눈 필담이다. 청국러시아공사와의 議約, 朝俄 육로통상, 가뭄, 학문, 문헌 등을 소재로 나눈 대화 내용이다. 「額勒精額來舘談艸」는 5월 22일 상오에 액륵정이 숙소로 찾아와서 나눈 필담이다. 각국 통상, 鐵路兵輪學, 水車, 농상, 사교, 아편, 단오를 맞아 부채 선물, 酒果 등을 소재로 나눈 대화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장래를 이끌어 나갈 사람이 몇인가를 묻자, 좌찬성 민태호, 상서 민영목, 김윤식, 시랑 윤태준, 민응식, 이조연, 어윤중 등을 들었다. 제일 끝면에는 남정철고종에게 올리는 계사가 실려 있다. 輪船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고종의 뜻을 받든 남정철이 이를 알아본 결과를 보고한 글이다.
특성 및 가치
남정철청국 방문은 통상과 종속이라는 두 가지 큰 임무를 띠고 이루어졌다. 러시아와의 통상 및 防俄政策, 조선의 종속 문제 등은 당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외교 현안이었다. 이홍장과의 필담은 이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 자료는 조선이 이러한 외교 현안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해 나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霞山稿
집필자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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