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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병자록(丙子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나만갑(羅萬甲) 저(著)
작성시기    :
1642 / 인조 20년
형태사항    :
크기: 26.4×19.4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2-207
M/F번호    :
MF35-337, 16-15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인조羅萬甲(1592~1642)이 지은 병자호란 당시의 난중 일기이다.
서지사항
藍色 龜甲紋 표지에 테두리를 목판으로 찍어 表紙書名을 필사한 題籤이 있다. 版下口에 ‘李王職實錄編纂用紙’가 인쇄된 회색 원고지를 접어 五針眼으로 線裝하였다. 책 제1면 우측 상단에 ‘藏書閣圖書印’이 날인되어 있다. 改粧表紙와 原表紙가 함께 묶여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에는 연도가 명확히 나타나 있지 않으나, 국립중앙도서관본에는 1642년(인조 20)의 일을 기록하고 있어 본서는 저자인 나만갑이 죽은 해인 1642년에 탈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만갑은 병자호란 당시 전란 시에 중요한 군복·무기·군량 등을 관리하는 糧餉使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러므로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측근에 있으면서 보고 들은 일을 일기로 엮었다.
본서는 서두에 청나라태조 누르하치建州女眞에서 일어나 세력을 떨쳐 후금을 세운 일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며, “丙子春初”로 시작되는 「記初頭委折」(이하 국립중앙도서관본 소제목)에서는 병자년 3월부터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이전 청나라와의 갈등 상황을 날짜별로 정리하였다. “十二日午後”로 시작되는 「急報以後日錄」에서는 병자년 12월 12일 청나라 군대가 우리나라에 침입했다는 도원수 김자점의 장계를 받은 날로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2월 8일 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심양으로 떠난 날까지 57일 동안의 일기를 기술하였다. 이어서 “朝鮮國王”으로 시작되는 1637년(인조 15) 4월 19일에 쓴 謝恩表가 있는데 여기서 인조를 ‘조선 국왕’으로, 청나라 태종을 ‘皇帝陛下’로 명명하고 있다. “南兵使 徐祐申”으로 시작되는 「記各處勤王事」에는 병자호란 때 남병사 徐祐申, 전라병사 金俊龍, 평안감사 洪命耉, 강원감사 趙廷虎, 원수 金自點, 재령군수 崔擇善, 전라감사 李時昉, 경상감사 沈演, 좌병사 許完, 우병사 閔栐 등이 임금을 돕기 위해 수행했던 일의 전말을 수록하였다.
서울을 떠날 때[當去邠之時]”로 시작되는 「記江都事」에서는 검찰사 김경징부사 이민구 등이 비빈·대군 등을 모시고 강화도에 갔다가 제대로 방비하지 않아 적에게 함락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자결하거나 도망간 인물들의 행적을 기술하였으며, 그 후 이들에 대한 처분까지 다루었다. “尹煌 兪榥 李一相”으로 시작되는 「記斥和死義諸公事」는 척화를 주장한 인물로 윤황, 유황, 이일상 등과 尹集, 吳達濟, 洪翼漢 등 삼학사의 일화를 수록하였다. “丙子冬”으로 시작되는 「雜記亂後事」에는 광해군의 죽음과 전란 때 7,000여 명이나 뽑은 무과 급제생의 악영향, 인조가 항복한 삼전도에 세운 청나라 태종의 송덕비 내용 등을 수록하였다.
“백관에게 상을 더할 때 김상헌이 사양하며 상소하기를[百官加賞金尙憲辭資上疏曰]”이라고 시작하는 「記淸陰被誣事」에는 국립중앙도서관본에 없는 내용으로 청음 김상헌의 상소글을 비롯해서 1638년(인조 16) 7월 29일 掌令 柳碩, 朴啓榮 등이 김상헌의 논죄를 청한 글 등이 실려 있다. “己卯秋”로 시작되는 「受淸之困辱事」는 1639년(인조 17) 명나라 공격을 지원하라는 의 요구에 대한 김상헌의 상소, 1640년(인조 18) 청나라 용골대 등이 조선의 처사를 힐책한 일, 그리고 에 정복된 뒤에도 의를 굽히지 않은 김상헌 등이 받은 곤욕을 다루었다. 본사에서는 이 뒤에 “얼마 후 의 사신이 왔는데[頃於胡差之來]”로 시작하여 영의정 洪瑞鳳이조판서 李顯英이 오직 적군 龍胡를 거든 일과 청나라에서 한국의 포수들을 대대적으로 보내게 한 일 등을 기술하였는데, 국립중앙도서관본에는 이 내용이 「난리가 지난 뒤의 일」 뒷부분에 실려 있다.
저자의 발문은 병자호란을 천고의 드문 일로 정의하고 병자록 저술 방법에 대해 “먼저 그 화가 일어나게 된 연유를 들고, 다음에 내가 눈으로 직접 자세히 본 것을 기록했으며, 남에게서 전해 들은 것은 널리 찾아보고 물어 보고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 보아 일의 잘잘못과 사람의 착하고 악함에 대해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남김없이 죄다 말했으며, 친하고 소원함을 가리지 않고 사실을 들어 똑바로 썼다.”고 하여 일어난 일의 본말을 사실대로 기술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병자록』의 대표적 사본은 본서와 국립중앙도서관본인데, 국립중앙도서관본은 소제목이 있는 반면 본서는 소제목이 없으며 오탈자도 많은 편이다. 소제목으로 나뉘는 부분조차 이어서 기술되어 있어서 편집 체계를 갖춘 국립중앙도서관본보다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928년 조선 박문사에서 신활자로 발행한 『壬辰及丙子錄』이 있는데, 이것은 한문에 토를 달았으며 두 사본과는 순서가 다르고 내용이 더 자세하다.
참고문헌
羅萬甲 著, 李基奭 譯, 『丙子南漢日記』, 瑞文堂, 1977.
羅萬甲 著, 尹在瑛 譯, 『丙子錄』, 正音文庫 169, 1979.
집필자
박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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