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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해위록(南漢解圍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석지형(石之珩) 편(編), 이운회(李雲會) 사(寫)
작성시기    :
1854 / 철종 5년
형태사항    :
크기: 27.0×19.2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187
M/F번호    :
MF35-1326, 16-181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인조 때에 판관을 지낸 石之珩(1610~1674년 이후)이 병자호란 때 겪은 사실을 일기체로 쓴 저술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과 書根題는 ‘南漢解圍錄’이다. 표지는 청색 바탕에 龜甲文이며, 五針眼으로 線裝하였다. 표지의 제첨은 테두리가 목판으로 인쇄되었고, 서명은 필사되어 있다. 각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종이에 정서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36장이 『남한해위록』이며, 뒤에 「望月」 등 龜峯 宋翼弼의 절구시 5편과 曹錫雨가 조부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송시열에 대한 윤증의 언급을 누락한 일에 대해 수원 유생들이 조정에 올린 글을 첨부하였다.
서문에서는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언급하였으며, 본문의 서두에서는 여진으로 이름을 고치고 정묘호란을 일으킨 일과 병자년으로 이름을 고치고 조선을 침략하게 된 과정을 기술한 뒤 병자년 12월 9일부터 이듬해 2월 11일까지 일어난 사실을 일자별로 기술하였다. 이어서 4월부터 11월까지의 일을 월별로 기술하였으며, 말미에 발문을 실었다.
청나라의 공격과 왕실이 강화도남한산성으로 옮긴 일, 척화파와 주화파의 다툼, 인조의 항복과 소현세자를 비롯한 신하들의 압송 등이 차례로 기술되어 있다. 나만갑의 『병자록』과 비교하면 왕의 일상이 보다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저자의 『남한일기』가 공식적인 사실 위주로 기록되어 있다면, 본서에서는 전란의 진행 상황은 물론 이를 겪는 인물의 심리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점이 다르다.
저자는 발문에서 남한산성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집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이는 형세와 힘이 부족해서 임금이 오랑캐에게 굴욕을 당한 일을 사실대로 기록하여 후세의 경계를 삼기 위함이라 했으며 병란의 시종은 물론 자세한 상황까지 숨기지 않았다고 하였다. 서문 말미의 “戊寅夏四月(1638년 여름 4월)”이라는 간기를 볼 때 병자호란 직후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문에 따르면 당시 27세인 저자는 工部員外郞의 직책으로 임금을 호종하였다. 그러나 정작 본서가 謄寫된 것은 1854년(철종 5) 李雲會에 의해서이다. 말미에 같은 해에 수원 유생들이 조정에 올린 글이 첨부되어 있는데, 이운회가 함께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저자가 쓴 『南漢日記』·『南漢山城記』, 羅萬甲이 쓴 『丙子錄』, 金尙憲이 쓴 『南漢紀略』 등과 함께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羅萬甲 著, 尹在瑛 譯, 『丙子錄』, 正音文庫 169, 1979.
집필자
박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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