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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규사(葵史)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859 / 철종 10년
형태사항    :
크기: 32.3×20.5cm / 판본: 목활자본(木活字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3.9×15.7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171
M/F번호    :
MF35-131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59년„„„(철종 10) 대구에서 간행된 조선시대 서얼과 관련된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서지사항
조악한 木活字로 간행되었다.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葵史’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乾·坤’으로 표기되어 있다. 書眉에 교정 내용이 필사되어 있다. 卷末의 “乙未季冬達西開刊”이라는 刊記를 통해 본 도서가 1859년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간기 뒤에 한 장이 補寫되어 있다. 각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규사』라는 제목은 본서 서두에 수록된 선조의 비답에서 “해바라기〔葵藿〕가 해를 향함에 곁가지를 가리지 않으니 신하가 충을 원함이 어찌 반드시 적자뿐이리오.”에서 유래하였다. 즉 ‘규’는 해바라기로 서얼을 지칭하는데, 본서는 서얼들의 충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이를 통해 서얼의 許通을 실현하려는 의도에서 간행되었다.
권1은 ‘謹案’이라 하여 선조의 비답을 수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1413년(태종 13) 徐選(1367~1433)의 건의에 따라 서얼 자손의 顯職 서용을 금지한다는 내용부터 1774년(영조 50)까지, 권2는 1777년(정조 1)부터 본서가 편찬되는 1859년(철종 10)까지 서얼의 허통 노력 등 관련 기사를 수록하였다. 이 밖에도 「부록」과 「葵史賢人錄」이 수록되었는데, 「부록」에는 宋穉圭(1759~1838)가 尹夏善의 편지에 대해 庶孫이 할머니를 위해 代服 3년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답변한 글이 기록되었다. 「규사현인록」에는 고려조의 2명과 조선조 57명, 추록에 6명 등 모두 65명의 서얼에 대한 간략한 전기가 수록되었다.
본서는 관찬 자료로는 『국조보감』과 『승정원일기』 등, 사찬 자료로는 李瀷의 『성호사설』과 柳馨遠의 『반계수록』, 成渾의 『우계집』, 조헌의 『중봉집』 등 여러 공사 기록을 참고하였다. 간행은 1859년 대구達西講舍에서 이루어졌다. 달서강사는 본서 간행 시점에 맞추어 선조 연간 서얼의 가계 계승의 정당함을 주장한 李珥를 모신 栗谷書院의 옆에 세워졌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서얼에 대한 정치적 차별 및 향촌 사회에서의 차별 철폐를 위해 편찬된 것이다. 동시에 『葵史原編』과 같은 기존 서얼 관련 자료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었다. 『규사』가 간행되던 19세기 중반은 서얼 이외에도 中人에 대한 기록들이 편찬되었다. 조희룡의 『호산외기』, 유재건의 『이향견문록』, 이경민의 『희조일사』 등이 이에 해당된다. 본서를 포함해 19세기에 편찬된 중인 관련 기록은 중인의 의식이 성장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도모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서얼의 허통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살피는 데 유용하다.
참고문헌
19世紀 韓國史學의 새 樣相」, 이기백, 『한우근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1.
《葵史》(1859)의 編纂과 刊行動機」, 정현주, 『역사학보』 137, 1993.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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