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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갑오군공록(甲午軍功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왕직 실록편찬실(李王職 實錄編纂室) 편(編)
작성시기    :
[1900] / 광무 4년
형태사항    :
크기: 26.9×19.5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4×15.8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156
M/F번호    :
MF35-106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는 데 軍功이 있는 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받은 품계, 軍功의 구체적인 근거 등을 자세히 적은 기록이다.
서지사항
‘李王職實錄編纂用紙’가 인쇄된 회색 단면 원고지에 펜으로 필사하였다. 版下口에 張次를 필사하였다.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으며, 四周가 인쇄된 題籤을 사용하였다. 靑色 龜甲紋 표지와 黃絲로 粧䌙되어 있다. 각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鎭靜에 군공이 있는 자들의 이름과 군공의 내용을 적어 놓았다. 제일 먼저 군공을 세운 사람의 당시 직함과 이름을 적고, 다음으로 군공에 따라 받거나 높여준 품계를 적고, 마지막으로 군공을 받게 된 구체적인 내용을 적었다. 모두 410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巡撫使 申正熙를 필두로 해서 中軍 許璡, 軍部協辦 權在衡, 종사관 鄭寅杓까지는 올려 준 품계만 적혀 있다. 이어서 각 지역별로 湖南招討使 閔種烈, 湖沿招討使 李勝宇, 忠淸監司 朴齊純, 全羅監司 李道宰, 漬州兵使 李長會 등의 군공과 군공의 근거가 적혀 있다. 이어서 統衛領官 등 영관급, 統衛隊長 등 대장급, 經理敎長 등 교장급, 순무참모관 등 참모관급, 순무별군관 등 군관급, 倡義를 통해 군공을 세운 사람들, 아전급, 직책 없이 단순히 공을 세운 일반 백성들, 병정급 등 동학난에 군공을 세운 사람들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총망라되어 있다.
이들의 군공 근거가 되는 사항들은 여덟 자로 일관되게 적혀 있으며, 어느 경우에는 군공을 세운 횟수를 적기도 했다. 또한 동학군을 잡거나 죽인 사람들의 경우는 동학난을 이해하는 좀 더 구체적인 사료로 이용될 수도 있는데, 특히 全州 退校인 韓信賢, 순창 유학 金永轍, 순창 백성 鄭昌昱 등 세 명은 몰래 장정들을 데리고 가서 全奉準을 생포하는 군공을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한신현은 앞서 이미 다른 공이 있었기 때문에 金川 군수에 임명되었다. 또한 순천의 양반 유생들이 모집한 의병인 義旅 千士成, 金聖祿, 李榮柱, 成庸熙 등은 倡義를 해서 순천부의 城을 회복하였고, 沁營領官 黃時中, 黃憲周, 포교 金時享, 포교 尹致根 등은 동학의 접주였던 金介男을 잡아 공을 세웠고, 전 고창 현감 殷德中은 匪魁 孫汝玉 등 세 명을 붙잡은 것으로 나와 있고, 고창 幼學 徐東植은 비괴 洪洛寬을 붙잡았고, 평창 사람 金忠根은 비괴 成文煥을 붙잡았다. 고부 사람 趙仁常, 순창 사람 李京佑·吳義善·申基五·洪命根·裵東煥·盧性七·黃一權·朴成大·林化京 등은 孫化中을 붙잡았다. 무안 유학 吳漢洙는 거괴 裵尙玉을 체포하였고, 해남 사람 朴徽憲金萬國은 거괴 金春斗를 체포하였다. 해남 사람 尹奎龍은 거괴 裵奎磷을 붙잡은 것으로 기술되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군이 패퇴하여 동학농민운동이 마무리된 뒤에 군공을 세운 관군과 관군을 도와 군공을 세운 사람들의 명단, 받은 품계, 군공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고종실록
舊韓國官報
承政院日記
日省錄
집필자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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