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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역대통감찬요(歷代通鑑纂要)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동양(李東陽)(명(明)) 등(等) 찬(撰)
작성시기    :
1748 / 영조 24년
형태사항    :
크기: 32.9×20.9cm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90권(卷) 49책(冊)(전(全) 92권(卷) 50책(冊)) / 판식: 반곽(半郭) 23.3×16.0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129
M/F번호    :
MF35-1105~110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李東陽, 焦芳, 王鏊 등이 明 孝宗(1470~1505)의 勅命으로 1507년(正德 2)중국 上古시대에서 元末까지의 史實을 요약하여 완성한 綱目體의 史書를 조선에서 재출간한 것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通要’, 版心題는 ‘通鑑纂要’, 書根題는 ‘通要’이다. 書腦 하단에 ‘共五十’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卷首에는 1507년의 御製序(3張), 凡例(3張), 總目錄(11張), 편찬자의 職名(2張), 引用書目(2張), 進書表(3張), 引用姓氏(5張)가 수록되어 있다. 모두 92권 50책인데, 권25~26(제15책)의 2권 1책이 누락되었다. 본서는 1507년에 內府에서 간행된 明刊本을 저본으로 삼아 조선에서 번각한 책으로, 『承政院日記』 1748년(영조 24) 윤7월 7일 己未條의 내용 중 “歷代通鑑纂要, 自慶尙監營開刊印上事 … … 故進獻件及院上件, 印送之意, 本院亦爲一體發關, 而監營只以進獻二件, 院上一件印送矣.”를 통해 볼 때 1748년(영조 24)嶺營에서 간행된 관판본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조선시대 경연을 비롯하여 지식인층에서 폭넓게 읽혔던 중국 사서로 정확한 刊年 및 경위는 알 수 없다. 구성 체제는 明 武宗의 御製序, 凡例, 卷次, 奉勅詳定官, 纂輯書籍, 進歷代通鑑纂要表, 引用先儒姓氏名, 本文으로 되어 있다.
어제서문에는 孝宗이 『通鑑綱目』을 즐겨 읽었는데 그 번다함을 걱정하여 翰林儒臣들에게 칙명을 내려 그 대략을 수집했고, 三皇에서 元末까지 요점을 적어 검열에 편하도록 편찬되었음을 밝혔다. 또한 孝宗이 직접 ‘歷代通鑑纂要’라 賜名하였으나 찬수 작업이 종료되기 전에 죽자 武宗이 歷代의 事迹을 모두 열람할 수는 없으나 治亂興亡과 善惡得失의 큰 뜻을 알아야 한다는 立敎垂訓으로 편찬을 완성하였음을 밝혔다.
凡例는 18조이며, 주요 내용은 『資治通鑑綱目』에 따라 編年과 敍事하고, 『前編』과 『大紀』 등을 參用하여 周 威烈王 이전 시기를 서술하고, 『續資治通鑑綱目』에 의거하여 이후를 서술하였다. 이때 편년은 君을 主로 하여 甲子를 本年 위에 쓰고 有事한 경우만 年을 기록하되 元年은 기록하도록 하였다. 正統은 帝號를 元年 위에 쓰며, 非統이나 無統은 甲子 아래에 쓰되 간편함을 따르고, 편년체로 서술하되 중요한 날짜만 적었다.
史論은 『資治通鑑綱目』뿐만 아니라 고증과 논단을 거쳐 治亂에 관계되거나 時宜에 절실한 것은 포함하였다. 매 시대마다 總斷하여 歷年圖를 기록하고, 이전과 이후는 補入하며, 治亂善惡에 관계되어 勸戒할 것 중심으로 간략하게 편찬하였다. 참고한 서적은 『皇王大紀』, 『資治通鑑外紀』, 『通鑑前編』, 『春秋左氏傳』, 『公羊傳』, 『穀梁傳』, 『國語』, 『史記』 등 19책이다. 纂要에 참여한 詳定官 李東陽, 焦芳, 王鏊 및 編纂官, 謄錄官, 催纂官 등이 나열되어 있고, 인용된 先儒로 左丘明 등 88인의 氏名을 밝혔다.
본문의 구성은 92권을 분량에 따라 50책으로 成冊하였는데, 제1책(夏·殷), 제2~4책(周·秦), 제5~11책(前·後漢), 제12~19책(魏晉南北朝·隋), 제20~33책(隋·唐·五代·宋), 제34~48책(宋), 제49~50책(元)으로 구성되었다. 송대사를 다룬 부분이 전체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점은 본서의 편찬 및 구성 의도가 한대송대 등 중화주의 입장을 강조하고자 하였음을 보여준다.
특성 및 가치
1518년(중종 13)許硡이 바친 『歷代通鑑纂要』를 인출하게 하였다는 기록과 1574년(선조 7)에 경연에서 柳希春이 추천한 기록 및 1741년(영조 17)검토관 李成中홍문관에 소장된 북경본[燕本] 『역대통감찬요』를 영조에게 찾아 올린 사실 등을 통해 중종 대 이후 영조 연간까지 지속적으로 주요 중국 사서로 읽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중화주의 입장의 역사관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집필자
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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