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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명기편년(明紀編年)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종성(鍾惺)(명(明)) 저(著), 왕여남(王汝南)(청(淸)) 보정(補正)
작성시기    :
[1700] / 숙종 26년
형태사항    :
크기: 34.7×22.4cm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무신자(戊申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2권(卷) 1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2×16.8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109
M/F번호    :
MF35-28, 1044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명대 鐘惺(1574~1625)이 짓고 청대 王汝南이 補定한 一代의 編年體 역사서를 朝鮮에서 간행한 것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明紀編年’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書腦 하단에는 ‘共十二’의 기록이 있다. 앞표지 면지에 ‘大正九年(1920)庚申二月日絲取換’이라고 기재된 첨지가 부착되어 있다. 본문에 朱墨의 구결이 달려 있다. 글자를 刀割한 후 별도의 종이에 날인하여 붙인 흔적이 보인다. 木活字가 섞여 있는 戊申字本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일산古2255-13)에 묵서된 ‘康熙三十九年(1700)八月日內賜吏曹參議權尙夏 …… 右承旨臣崔(手決)’의 內賜記를 통해 볼 때 본서 역시 1700년(숙종 26) 무렵 인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명대 鐘惺의 編年이 熹宗에서 끝났으므로 청대 王汝南이 다른 기록을 참고 보충하여 완전한 一代의 역사서로 완성한 것이다. 본서는 12권 12책으로 책머리에 “順治庚子(1660)仲秋楚人季雍王汝南謹書於虎丘快舍”이라는 왕여남의 서문이 있고, 同鑄字所印의 他本을 參照하면 “康熙三十九年(1700) 權尙夏”라는 內賜記가 있다. 종성이 원래의 편년을 끝낸 시기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종성의 생몰 연대가 1574~1625년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1625년 이전에 편저되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으며, 서문을 통해 왕여남이 補定을 끝낸 것이 1660년(順治 17)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여남중국의 다양한 왕조가 있었지만 바로 앞 왕조였던 명대사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는 것이 시급하며, 많은 명대사 가운데 간결하면서 편년의 간요함이 있는 종성의 본서를 家藏 및 草野에서 수집한 기록 등을 참조하여 보정한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서문에 이어 明紀編年目錄, 卷1 太祖高皇帝, 卷2 太祖高皇帝, 惠宗讓皇帝, 卷3 成祖文皇帝, 仁宗昭皇帝, 宣宗章皇帝, 卷4 英宗睿皇帝, 代宗景皇帝, 英宗睿皇帝, 卷5 憲宗純皇帝, 孝宗敬皇帝, 武宗毅皇帝, 卷6 世宗肅皇帝, 穆宗莊皇帝, 卷7 神宗顯皇帝, 光宗貞皇帝, 卷8 熹宗哲皇帝, 卷9~10 懷宗端皇帝, 卷11 赧皇帝, 卷12 隆武, 附魯監國 등의 체계를 갖추었다. 권8까지는 권 머리에 “督學 臣 鐘惺 謹定”이라 적혀 있어 종성이 편찬한 것임을 알 수 있고, 권9부터는 권수에 “草莽 臣 王汝南 補定”이라 적혀 있어 왕여남이 보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明紀編年』의 소장처는 장서각·규장각 등이지만, 현존하는 여러 판본을 대조하여 보면 조선시대에 懸吐本 등 다양한 판본이 印刊되었으며, 왕실의 경연을 비롯하여 널리 읽혔음을 알 수 있다. 1697년(숙종 23)行都承旨 李玄錫이 『昭代典則』, 『明政統宗』, 『皇明通紀』, 『大政紀』, 『明紀編年』, 『記事本末』 등의 서적을 간행할 것을 건의한 점, 1728년(영조 4) 2월 24일 소대를 행하고 『명기편년』을 강론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왕여남이 보정한 이후 조선에 유입되어 간행이 시작되었으며, 영조 연간에 이미 강연에 사용될 정도로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명말 이후 유명 작가의 이름을 상업적으로 도용하여 임의로 간행한 사례가 많은 점과 종성의 저작으로 알려진 『明通紀纂』, 『資治通鑑正史大全』, 『五經纂註』, 『鍾評左傳』, 『詩經圖史合考』, 『毛詩解』, 『捷錄大全』 등이 진위 문제로 논쟁되는 점을 감안하면 본서의 종성 저작 여부에 대해서는 향후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조선 후기 반청 의식과 대명의리론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숙종 대에 경연 과목으로 본서가 채택되어 召對에서 進講되었던 점은 尊周論을 바탕으로 시대 상황을 극복해 보고자 하였던 조선 왕실과 지배층의 역사인식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
영조실록
집필자
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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