楮紙를 사용하여 木活字로 간행한 판본으로, 卷9만 남아 있는 零本이다.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孝宗大王實錄’이다. 서문 및 발문이 없어 정확한 간행 연대를 알 수 없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孝宗實錄』은 孝宗 재위 10년의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으로, 本文 21권 21책과 효종의 行狀, 誌文, 諡冊文, 哀冊文 등이 수록된 부록을 합쳐 총 22冊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660(현종 1) 5월 實錄廳을 설치한 뒤 이듬해 1661년(현종 2) 2월에 완성하여 인쇄한 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봉안하였다. 활자는 『仁祖實錄』과 마찬가지로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孝宗大王實錄』은 그중 권9의 일부이다. 『효종실록』 권9는 효종 3년 7월 3일부터 12월 28일까지였지만, 『효종대왕실록』은 10월 16일 기사부터 남아 있으며 그나마도 낙질이다.
원래 실록에는 사관들이 직접 작성하는 사초 등의 기록인 時政記, 『승정원일기』, 지방관들이 올린 보고, 비변사 장계, 형조나 의금부의 주요 사건 문서, 중국과의 외교 문서, 이름 있는 신하들이 죽었을 때 적어두는 卒記 지진·홍수 등 재해 기록, 사헌부와 사간원의 등의 정책 비판 및 관리 감찰 기록, 중요한 상소문, 관리 임명 기록, 나라의 제사나 장례 등의 의례 기사가 기록되는 바, 『孝宗大王實錄』 역시 그 범례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1652년(효종 3) 후반기는 金自點 옥사가 끝나고 尹善道가 元斗杓를 비판하면서, 또 효종의 군사 정책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차츰 정국이 경색되던 무렵이어서 다소 긴장된 상황을 보여주는 기사가 많다.
특성 및 가치
현존 『효종실록』의 일부가 아니라 별도 간행본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서지학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