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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헌묘기사(憲廟紀事)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850
형태사항    :
크기: 30.9×19.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3권(卷) 3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2×15.2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103
M/F번호    :
MF35-287
기록시기    :
1850~1863年(哲宗年間)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40년(헌종 6)부터 1846년(헌종 12)까지 주요 기사를 수록한 역사서이다.
서지사항
四周雙邊, 10行, 上下內向2葉花紋魚尾의 목판 印札空冊紙에 필사하였다. 表紙書名은 ‘憲廟記事’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一·二·三’으로 필사되어 있다. 書腦 하단에 ‘共三’이라는 기록이 있다. 書根에는 書根題 ‘憲廟紀事’와 冊次가 기재되어 있다. 1840년에서 1846년의 기록인 것으로 보아 필사 연대는 그 이후임을 알 수 있다. 각 책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1840년 정월부터 1846년 12월까지 편년체로 편찬하였는데, 날짜·災異를 포함한 날씨, 국왕의 거둥을 기록하는 실록의 정형화된 기록 방식이 아니라, 각 관청과 대신들의 인견 기록을 중심으로 수록한 특징을 지닌다. 兩司, 玉堂의 경우, 관청 아래 차자나 계를 올린 관원 명단을 分註로 기록하여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서에는 실록에 보이지 않는 기사도 많다. 1840년(헌종 6) 1월 李晦榮이 邪學을 금지하고 五家作統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폐단을 제거하라고 말하면서 이조판서 宋冕載를 비판한 내용이 그것이다. 『헌종실록』에는 “정언 이회영의 벼슬을 삭탈하고, 곧 大臣의 말에 따라 귀양 보냈다. 상소하여 전 이조판서를 논하였는데, 말에 挾雜이 많았기 때문이다.”라고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經筵·臺閣의 신하를 선택하여 권면하여, 國王의 紀綱을 가다듬고 怪孼을 없애며 正學을 밝히고 邪說을 그치게 하여, 저 서양 오랑캐의 邪術을 다스리라.”는 집의 金鼎元의 상소는 『憲廟紀事』와 마찬가지로 『헌종실록』에도 全載되어 있지만, 김정원이 이로 인해 趙寅永을 委官으로 하는 推鞫을 받은 기록은 『헌묘기사』에만 수록되어 있다. 대사헌 金弘根尹尙度·金魯敬을 탄핵한 상소는 『헌종실록』에 상세하지만, 대왕대비가 대신들을 인견하여 이 문제를 상의하는 장면은 『헌종실록』이 아닌 『헌묘기사』에 충실하게 기록되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헌종 연간의 『헌종실록』이 소략하고, 『승정원일기』마저 1840년부터 부재한 상태에서 그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비록 분량으로는 다른 두 가지 편년 기록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조정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크다.
집필자
오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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